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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le Bridge - Adventist Movement

연구서적

최후의 전쟁..
2015.10.14 01:36

제 5 장 우리의 준비

제 5 장  우리의 준비


우리의 준비 첫 번째 단계는 거듭나는 것임 

죄인은 하늘에 들어갈 수 없는데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하늘과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들어가는 첫 단계는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요 3:3)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거듭남으로 시작된다. 
타락한 인간은 유전적인 죄인이다. 
인간은 “죄악 중에 출생하였”(시 51:5)으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이다. 그러므로 다윗은“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라고 고백한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속에서 나오는 것이 다 죄이다. 
예수님은 죄 때문에 심장이 파열되었으나 인간은 죄를 즐긴다. 
죄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절대적인 죄인은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다. 
어떤 인간도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본질상 죄인의 상태에 관하여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롬 3:11-18)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본질상 죄인인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우리가 빠진 죄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은 악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고칠 수 없다... 교육과 수양과 의지력의 연단과 인간의 노력은 각각 상당한 분한을 가졌으나 이것들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무력한 것이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서 성결해 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니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곧 그리스도시다... 구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즉, 사람이 새 마음과 새 욕망과 새 목적과 새 동기를 받아 그것으로 하여금 새 생애에 들어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본성적으로 사람에게 잠재하고 있는 선을 개발시키기만 하면 족하다는 관념은 치명적인 오해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 함이니라’ (고전 2:14) 그러므로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7) 또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에는 기록하기를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애를 깨닫고 그의 품성의 인자하심과 자부적 온정을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하나님의 율법의 지혜로움과 공의로움을 깨닫고 그 율법이 사랑의 영원한 원칙 위에 세워진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넉넉지 않다. 사도 바울도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부르짖기를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6),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 7:12)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첨가하여 심령의 고민과 절망 중에 말하기를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 7:14)라고 하였다. 그는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순결과 의를 갈망하여 부르짖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고 하였다. 이러한 부르짖음은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죄의 짐에 눌린 자들의 마음에서 발하는 부르짖음이다. 이런 모든 부르짖음에 대한 대답은 다만 하나뿐이니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 1:29)함이다.” (정로의 계단 18, 19) 

십자가 위에 우리의 모든 희망이 걸려 있다. 십자가만이 죄인을 위한  용서와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죄의 짐에 눌린 모든 사람들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아야 한다. 사람이 거듭남으로서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사단의 정신과 하나가 됨으로 하나님과는 적대(원수)관계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인간은 자기 스스로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데 마치 중풍병자가 자기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인간을 죄의 속박(정신)에서 건져 내어 하나님의 정신과 하나 되게 하심으로 사단(죄)과의 적대관계가 되게 하실 것이었다. 이 약속은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서 주어진바 되었다. 

사람들이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일이 일어난다. 과거의 죄가 너무나 가증스럽고 싫어진다. 다시는 그 죄 가운데 빠지고 싶지 않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과거에 즐겼던 쾌락을 다 버리게 된다. 과거에 좋아하던 것들을 싫어하게 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영혼의 생명과 기쁨으로 간직하게 된다. 새로운 감정, 새로운 흥미, 새로운 애착, 새로운 열심, 새로운 의지를 갖게 되며 무한히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이리하여 사단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된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온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데 오직 주만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하며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그의 모든 삶은 무엇이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사용하며 오직 주의 뜻대로 되기를 소원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옛것을 변경하고 계량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자신과 죄에 대하여는 죽고 전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성령의 효과적인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시대의 소망 172)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7)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욥 14:4) 

그러므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영접함으로 위로부터 오는 새 생명을 받고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이론이나 기분이 아니다.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인데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사람이 혈통(육)을 따라 태어날 때에 실지로 아버지의 씨(생명)를 받고 태어나므로 아버지의 씨를 가졌다고 해서 자식이 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거듭나는 것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씨(말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3-25)고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요 1:14)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에 받아들일 때 예수 안에 있는 말씀(씨)을 받는다. 이 말씀의 속성은 사랑, 곧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품성이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요 1:16)므로 그 사랑을 아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과의 생명(사랑)적인 관계로써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 생명적인 관계에서 아는 사랑이 곧 영생에 이르는 지식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 7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고 한다. 이 말씀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즉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품성이며 이 품성을 가질 때에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그의 모든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이 사랑을 알게되면 이타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할 수 있으며, 영혼에 대한 애착으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자질을 갖추는 우리의 품성이 되는 것이다. 

대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신성이 인성을 입고 사람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비 중의 신비이다. 이 신비는 인간이 풀 수 없는 오묘이다. 따라서 거듭남은 신비에 속한 것이며 거듭남의 경험을 함으로서만 알게 되는 비밀이다. 이 경험은 죄인이 십자가의 사랑을 만날 때에 이루어진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랑은 온 율법을 지키게 하는 생명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 일은 모태 신자로 태어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만 되는 것이다. 신앙고백에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회개와 헌신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생애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며 하나의 감정 신앙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런 신앙에 만족하면서 마음은 자아로 가득 차 있다면 이는 거듭난 것이 아니다. 
“선과 성결에 대한 욕망은 좋기는 좋으나 그것만으로 그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희망하고 소원만 하다가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저들은 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데 까지 이르지 않는다.” (정로의 계단 46) 
하나님을 아는 신앙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그 이상의 지식을 말한다.  성경은 학문이나 이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정신(품성)을 받는 것이며,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인간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는 거듭남의 경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이론적 신앙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음에 기록된 선지자의 증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신앙을 한 번 더 점검해 보기로 하자.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의 녹명책에는 많이 올려져 있지만 그들은 어린양의 생명책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이 교회의 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주님과 연합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어떤 부서의 의무 수행에 열심이요,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는지는 모르지만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 많이 있다. 
만약,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순수한 회심이 없으면, 
만약, 하나님의 생기가 영적 생명을 회복시키지 않으면, 
만약, 진리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늘의 원칙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썩지 아니할 씨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그들의 유일한 안전책으로 믿지 않으면,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본받고 성령 안에서 일하지 않으면 그들은 벌거벗은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리뷰 1893. 1. 17) 

“교회의 녹명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외관상으로 진실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 그들은 교적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은혜의 내적 역사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증언 5권 278) 

“거듭남은 우리 시대에 좀처럼 보기 드문 진귀한 경험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 중에는 성화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침례를 받았지만 산채로 장례를 치뤘다.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그토록 많은 문제가 있는 이유이다.” (원고 148) 

사람들은 거듭남이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단계적인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0)

“부르심과 의롭다하심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부르심은 죄인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것이며 성령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사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나오는 제일 첫 단계는 하나님의 영의 이끄심을 받는 것이다. 사람이 이 이끄심에 응할 때 그가 회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것이다. 주께서는 계속적으로 죄인의 마음을 감동케 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당신 자신을 바라보도록 주의를 환기 시키신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영혼을 이끄시고 힘을 주시며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회개의 체험(거듭남)을 얻도록 인도하지 않으신다면 단 한 발자국도 신령한 생애로 나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구속사업의 첫 단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혼돈하고 있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91) 

현재 교회 안에 열성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성경을 배우고 은혜 받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려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예수님의 은혜로 채워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막연한 구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은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회개의 경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죄인은 자신이 행하는 최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타락한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구속 사업은 율법주의나 인간의 노력의 공로는 한 방울도 섞일 수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가장 불안한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다. 구원 받기 위해서는 날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 요구에 부딪힌다. 그러나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볼 때에 좌절감에 빠져 구원의 확신이 없고 피곤하고 지친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주장은 복음의 능력을 부인하는 주장이다.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죄를 이기고 벗어남으로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재창조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마음에 받아들여지므로 죄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되는 것이다. 구속의 경륜은 인간 안에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하늘의 거룩한 분위기에 어울릴 수 없으므로 죄인은 하늘이 오히려 불편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은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지금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나는 과연 거듭났는가? 
나의 영혼은 날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에 의하여 새로워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지성소 안의 신앙 경험(죄가 도말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한 상태에 있다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은혜의 시간은 지나가고 우리의 죄를 받아 주실 예수님의 중보는 마쳐질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죄는 마음에 예수님이 거하시지 않으므로 형식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하늘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 드리자!! 


우리의 준비 두 번째 단계는 성화되는 것임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의 삶을 통하여 성화되어야 한다. 성화는 거듭남의 연속이며 주어지는 빛을 따라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품성 변화이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잠 4:18)는 것이다. 
구원은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대로 우리는 아직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즉 ‘우리가 시작할 때에(거듭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히 3:14)는 것이다. 

구원은 거듭남(칭의)에서 시작하여 거듭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즉 십자가의 구원은 용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는 무한한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무시해 온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변화시키는 능력이 십자가의 복음 속에 포함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에 십자가의 사랑이 자리 잡게 될 때 그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삶으로 인도한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면 예수님을 믿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길로 빠지게 된다. 

거듭남은 한 영혼을 성화시키려고 파멸에서 구원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성화는 성령을 통하여 하늘의 생애를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이다. 
거듭남은 사단에게 속박된 죽은 양심에서 해방되어 성화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의는 입혀 주시는 의이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의는 나누어 주시는 의이다. 
첫째 것은 우리가 하늘에 갈 수 있는 자격이고, 
둘째 것은 하늘에 살 수 있는 적합성이다.” (리뷰 1895. 6. 4) 

아무도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이 되지 않으면 율법을 순종할 수 없으며 율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 신앙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날(심판)에 각 사람의 품성을 재어 볼 위대한 표준이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성화케 하시는 힘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길에 행하게 하신다.” (리뷰 1890. 6. 10) 

성령으로 거듭난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삶의 원칙이 되며 그들의 소원은 그리스도의 품성에 도달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사람들을 택하사 거룩하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영원한 복음이 이 일을 할 것임).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나님의 율법은 죄를 묵인하지 않으시고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에게 메아리쳐 오는 하나님의 목소리는 항상 ‘더욱 거룩하여라, 더욱 거룩하여라’ 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대답은 항상 ‘예수님, 거룩하게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거룩함은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치는 모든 사람의 손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다. 죄와 사단을 이기려고 투쟁하는 모든 영혼을 위하여 거룩한 능력이 마련되어 있다.” (원고 22, 113) 
칭의는 믿음으로 받고, 성화는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화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더 깊이 깨달아 가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를 더욱 굳게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주어진 빛에 순종하면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은 지성소에서 비춰오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한 죄인들을 위하여 치루신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더 밝은 눈으로 보게 될 때 자신의 죄됨과 무가치함을 통감할 것이며, 더 깊은 회개로 이끌림을 받는다.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며 오직 십자가만 높이고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주님은 그 가련한 죄인을 안아 자신의 영광의 두루마기를 입혀 아버지 앞에 세우실 것이다. 이들에게 온 세상을 환하게 할 늦은비의 약속이 허락될 것이다. 

“성경상 성화를 체험한 사람은 겸손한 정신을 나타낼 것이다. 성결의 두려운 위엄(지성소의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세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의 순결하심과 완전하심에 비하여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된다. 

선지자 다니엘은 참된 성화의 모본이었다. 그의 긴 인생은 그의 주님을 위하여 바친 고상한 봉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존경받는 선지자는 자신의 순결과 성결을 주장하는 대신에 자신을 죄 많은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그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교훈을 주셨을 때에 그는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 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다고 하였다(단 9:15-18, 10:8). 
욥도 폭풍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 하나이다’(욥 42:6)고 부르짖었다. 
또 이사야는 스랍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하고 창화하는 소리를 듣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3, 5)고 크게 외쳤다. 
바울은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가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은 후, 자기 자신을 가리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고후 12:2, 엡 3:8)라고 말하였다. 

갈바리 십자가의 그늘 밑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자고하거나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으스대는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고뇌의 원인이 자기의 죄였다는 것을 느끼며 그런 생각이 그들을 스스로 겸비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생애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과 약점을 가장 분명히 깨닫고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쟁투 470, 471)
 
나는 지금 성화되고 있는가? 
나는 매일 매일 더욱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가? 
나의 온 정신 속에 오직 십자가만 높임을 받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의 빛을 따라 성화되고 있다면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될 것이며, 오직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의 공로와 의에만 희망이 있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거듭남과 성화됨과 완전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늘가는 길은 첫 발을 옮긴 때부터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이런 경험이 없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죄인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은 곧 끝날 것이다. 


우리의 준비 세 번째 단계는 완전해지는 것임 

지금은 죄가 도말되는 시대이다. 죄의 도말은 완전한 의인을 만들어 내는 구속 사업의 마지막 단계이다. 
죄와 죄인에게서 분리된 자들만이 하늘에 들어 갈 수 있다. 
죄인을 위한 예수님의 중보가 끝나면 불의한 자는 완전히 불의하고 의로운 자는 완전히 의롭게 된다. 그때에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두 부류 중 어느 한 쪽에 속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든지 안 믿든지 할 것이며, 완전한 죄인이 되든지 완전한 의인이 되든지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든지 하나님의 인을 받든지 하여, 멸망하든지 영생하든지 할 것이다. 
반쯤 회개한 사람들은 아무도 하늘에 들어 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하늘에서는 우리들의 운명이 생사 간에 결정되는 엄숙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명령은 일종의 약속이다.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을 의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회개하는 영혼에게서 죄를 분리시키신다. 그분께서는 마귀의 역사를 멸하기 위하여 오셨으며 모든 회개하는 영혼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보전할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셨다. 
유혹자의 힘이 그릇된 행동에 대한 구실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인자께서 당신의 생애에서 완전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그들의 생애에서 완전하여야 한다.” (시대의 소망 311) 

영원한 복음은 완전한 진리이며, 완전한 진리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진리이다. 

“현대의 기별,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이다. 이 기별의 열매는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거룩한 신임장을 가지고 있다. 저들에게 증거된 고귀한 진리를 크게 필요로 하면서도 그 기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는데 저들은 저들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하늘의 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큰 손실을 당하게 되었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59)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전체를 바치는 것이며 마음속에 있는 하늘의 원칙에 마음과 생애를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556)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대 속죄일에 살고 있다. 대 속죄일 마지막 시간에 죄를 없애는 일이 있었던 것처럼 역사의 마지막에도 죄를 없애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죄는 도말되어야 하고 마음의 성소는 정결케 되어야 한다. 아직도 용서받지 못하고 버리지 못한 죄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철저한 회개, 즉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회개의 경험에 들어가야 하며, 개혁이 따르는 참된 회개를 해야 한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죄가 도말되는 때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4-2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3,34)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예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대쟁투 323) 

지금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심비에 새겨야 할 때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6-19) 고 하신다.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이 기별은 지금 이 시대에 주어진 기별이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늘에서 행하시는 마지막 중보를 알려 주는 현대 기별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우리의 표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표준을 세우게 된다... 오직 진리만이 성화케 하는 매개물이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11) 
“참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함을 가져오는 경험을 얻는다. 그의 양심에는 한 점의 죄도 없고 그의 영혼에는 부패의 흔적도 없다. 율법의 영적 의미가 그의 생활 속에 도입된다. 구속주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타 오르는 열기가 그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두꺼운 구름을 말갛게 씻어버렸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뜻이 되어 순결하고 고상하고 정화되고 성화된다. 그의 몸은 성령의 전이 되기에 합당하고 거룩함이 그의 품성을 아름답게 한다. 하나님은 그와 교제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몸과 영혼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리뷰 1896. 11. 24)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완전한 의를 주시기 위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셨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영원한 생수를 마실 수 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사람이 신성이 내재한 인성의 삶을 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어떤 훈련을 받아야 되는지 또, 이 땅에서 어떤 원칙들을 실천하고 하늘의 생애를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은 인간의 최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주어졌다.” (교육 74, 75) 

성경 전체에 나타난 영원한 복음은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의 세 천사의 기별로 마쳐진다.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영원한 복음을 가진 세 천사는 성소진리를 통하여 보여진 구원의 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여 백성들을 지성소로 인도한다.
 죄인은 성소 뜰(오늘날은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므로 거듭난다. 이 경험은 구원의 첫 단계의 경험이다. 
거듭남으로 깨끗하게 된 죄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성소 안에 들어가 거기서 하늘의 법도를 배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화된다. 이러한 모습이 거듭난 성도들의 신앙 경험이다. 오직 진리만이 삶의 원칙이 되며,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 누리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경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성화의 경험은 구원의 두 번째 단계의 경험이다.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인침 받기 위하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는 경험이다. 세상에서 분리되고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백성들은 점점 죄와 상관없는 성숙한 신자의 경험을 한다. 이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보좌(시은좌) 앞에 있는 십계명에 그들의 품성을 비추어 봄으로 철저한 회개의 경험을 한다. 과거의 죄를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들은 죄가 도말되고 다시는 그들의 죄가 기억됨이 없이 깨끗하게 지워져버리므로 하늘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의 죄를 완전히 없이하시기까지 그 모든 단계에 유효하게 되어 죄인을 죄로부터 구원하여 하늘에 데리고 가시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한탄만 하면서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벗어나 승리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은혜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결국 그들이 평상시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영원한 복음에는 심판이 있다. 이 심판은 이 시대에 보내진 현대진리의 표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세 천사의 기별은 이 시대를 위한 현대기별이다. 이 기별에 의하여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이 기별은 교통표지판처럼 분명히 제시되어야 하며, 아무도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천사의 기별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파되어야 하며, 믿음과 행함의 일관된 진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 기별이 전해져야 할 만큼 바르게 전해지지 않으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 이 기별은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즉,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이 기별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역사도 세상도 하늘도 다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진 마지막 성도가 준비되면 예수님은 곧 오실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그토록 오래 지연되는 이유는 우리(나)의 문제이다. 

“온 땅에 경고를 발하라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고 심히 가까이 이르렀다는 것을 말 해 주라. 경고를 받지 못한 자가 한 사람도 없게 하라” (리뷰 1914. 11. 12) 
이 세상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을까? 
지금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 이 기별이야말로 복되고 즐거운 소식이며 모든 영혼을 감동시켜야 하고, 우리 가정에서 거듭 반복하여 전해야 하며,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 할 소식이다. 이 이상 더 즐거운 소식이 어디 있는가?” (서신 55,1886)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에 우리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화답하자!!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지금까지 이 책을 잘 읽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더 읽으십시오. 그리고 이제는 베뢰아 사람처럼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기별이라고 깨달아 진다면 그 모든 말씀에 응하십시오. 일요일 휴업령이 어떤 형태로 다가오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질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율법전쟁은 마지막 성도(우리)들을 통하여 끝마쳐질 것입니다. 마지막 성도들이 보여주는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삶과 행복을 주시기 위하여 세우신 하늘 정부의 대 원칙인 사랑의 율법이 사단과 그의 부하들과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과 우주거민들 앞에서 높임을 받고 찬양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율법이 다시 그 정당한 위치를 회복할 때에 구속 사업은 마쳐질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전쟁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마지막 자비의 기별이 마쳐지면 더 이상은 은혜의 기회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다만 선악간의 심판이 있을 뿐이며, 모든 인류는 생사간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에 매여 중요한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인생의 답을 간직하고 살아가십시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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