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에서 폐와 임파선까지 전이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온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입니다. 저는 5년 전 왼쪽 유방암 수술을 받고 다시 4년 4개월 만에 폐와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상태에서 지난 8월까지 항암치료를 20회 받고 급기야 이곳 벧엘수양원에 내려왔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겐 정말 호랑이처럼, 아니 고양이 앞에 쥐인 듯 항상 두렵고 피할 수 없는 무서운 홀 시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어쩌면 아마추어 연예인처럼 활동하며 속세에 빠져 다니시는 어머님의 뒷바라지와 욕구를 채워드리기에 늘 지치고 힘이 겨웠습니다. 5남매 중 오로지 큰아들만이 자식이고 남편인양 믿고 사시는 어머니에겐 며느리가 아닌 사랑을 빼앗긴 질투의 대상인 ‘저 여자’인 제가 자리하고 있어 늘 피할 수 없는 애증의 가슴앓이를 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9남매의 둘째이신 어머님 형제분들의 모든 대소사는 항상 우리 네 식구에 한 달에 쌀 한 가마를 소비할 정도로 우리 집을 경유하며 이루어 졌고 늘 여왕처럼 군림하며 대접 받음을 즐겨 하셨으며 분별없는 낭비로 한 달 용돈 100만원도 부족하셨으니... 그야말로 나의 삶은 깊은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대며 한 발을 빼면 다시 한 발이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듯 힘들고 헤어나기 벅찬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만리 힘들게 비행하고 며칠 만에 돌아온 남편에게 번번이 하소연할 수도 없어 제 가슴엔 늘 암울함만이 쌓여갔고 마치 늪 속을 방황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중, 5년 전(2000년) 여름, 어머님은 아침에 수영을 다녀와서 나비처럼 예쁘게 모시한복을 차려 입고 은행에 돈 찾으러 외출하시다가 동네 어귀 길에서 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쓰러져 78세 일기로 돌아가셨고 그날 가지고 계셨던 핸드백 속엔 ‘은행에 돈 찾으러 가는 날 7월 18일, 통장 비밀번호 ○○○○’라고 적힌 메모쪽지와 함께 도장 그리고 1,600만 원이 든 통장이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한 달 후 저는 왼쪽 유방암 2기라는 충격적인 선고를 받고 절제수술을 받았으며 그 이후 지난 4년 4개월의 투병기간이, 어머님이 안 계셨기에 그래도 제겐 크게 숨쉴 수 있었고 마음 편하고 즐겁게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눈치 속에 못다 한 사랑과 성의를 다 베풀어 주었고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저의 달란트를 소신껏 펼칠 수 있는 정상 궤도에 이르렀으며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바쁘게 ‘무주 구천동 33경전’이란 제 2회 개인전도 성황리에 끝냈으며 문화센터에서 한국화 지도와 화실운영에 정말로 기쁘고 보람되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해(2004년) 12월24일 종합검진에서 폐에 5mm 그리고 가슴 임파선에 모래알을 뿌려 놓은 듯 암이 재발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또 다시 커다란 슬픔과 참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제가 25년 전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고 이른바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했지만 소위 발바닥신자라는 말처럼 주일에 미사 다녀오면 한 일주일을 그냥 나의 생활에만 여념 없이 바쁘게 주님을 잊고 살았으며, 성경말씀 한 번 읽지 않는 게으르고 부끄러운 삶의 연속이었으니, 이 슬픈 절망 앞에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리는 마음마저 염치없고 죄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병원에서 최선의 치료 항암제(탁솔)를 1주일에 한 번씩 맞고 UFT라는 신약을 병행하여 매일 먹는 치료가 진행되었습니다. 점차로 느껴지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독소가 얼굴에 여드름마냥 돋아나고 발바닥엔 감각이 마비되고 마치 모래 자갈이 잔뜩 붙어 있는 듯 이물감으로 걸음 걷기마저 불편하였으며, 머리카락과 하물며 속눈썹까지 모조리 빠졌으며 정말 암세포보다 정상세포가 더 죽어가는 상태에서 병원에 의사가 필히 하루에 소고기 600g씩 꼭 먹으라는 지시에 바보처럼 착실히 따르다 보니 몸무게가 8개월 동안 무려 10kg이나 늘어나 숨이 차고 정말 내가 봐도 보기 싫은 뚱뚱보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곳을 다녀간 교우 ○○○씨가 대동맥에 암이 전이되어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곳에서 23일간 수양을 하고 CT를 찍은 결과 암이 2/3가 줄었으며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동생 수녀님으로부터 전해 들으면서 저는 순간 ‘그래 맞아, 완치가 보장되지 않는 이 힘든 항암치료를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지... 나도 그곳에 내려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이튿날 항암주사를 20번째 끝내고 퇴원하여 새벽 5시에 남편과 함께 내려왔습니다.
드디어 벧엘수양원에 도착하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커다란 돌에 새겨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는 말씀이 눈물이 나도록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저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제 마음은 너무도 평안하고 마치 친정엄마 품에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하루에 두 차례씩 전해주시는 최 원장님이 전하시는 성경 말씀은 정말이지 구구절절이 고단백 영양제와 치료제가 되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좋은 물, 온갖 풀벌레 소리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울려 퍼지고, 푸르고 싱그러운 아름다운 자연의 동산에 마치 포근한 새의 둥지처럼 자리하고 있는 이곳 벧엘수양원에서 온갖 잡다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멀리하고 잊은 채 건강식과 오로지 하나님의 빛나는 보석 같은 귀한 복음 말씀만을 나의 가슴에 오롯이 한 아름 꽃으로 받아 안으며,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거듭 새로 태어나기 위해 간구하며 애쓰고 있는 이 미흡한 저에게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림은 하나님께서 저를 가엾이 굽어보심일까요? 저는 지금 마음과 몸이 최상의 컨디션 상태입니다. 불편했던 몸의 상태가 거의 호전되었으며 특히 한 달 동안 체중이 6kg이나 조절되었으니 지금은 날아갈 것 같이 몸이 가볍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너무도 행복합니다. 제 몸에 재발된 고약한 암은 지금 이미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이곳 벧엘수양원 최 원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여기 계신 여러분도 다 함께 주님 은총 안에서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5년 후에 온 편지)
뜨거운 태양과 7월의 푸르름이 어우러져 결실을 위해 성숙해 가는 하절기에 원장님 안녕하세요!
벧엘수양원 가족 함께 안녕하신지요?
돌아보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며 5년 전 꼭 이맘 때 수양원에서의 두 달의 생활은 저에게 새로운 생명의 삶에 끈을 잡고 다시 태어난 계기가 되었기에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말하지요. 아마 그때 제가 항암치료를 계속 하고 수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한 벧엘수양원은 제가 다시 태어난 제2의 고향이라고 늘 말하지요.
지금 수양원에 계시는 여러분, 탁월한 선택을 하셨어요. 힘내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고 그리고 수양원에서의 건강 채식 식단과 맑은 공기, 좋은 물, 운동,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유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