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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le Bridge - Adventist Movement

연구서적

성서의학
2015.10.14 00:47

제1장 - 치유 사례담

제1장 - 치유 사례담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축복 받은 자

 

저는 광주에서 왔습니다.

중병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약간의 위장병이 있었지만 심신이 고단해서 어떤 분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와 보니 이곳은 초교파의 모임이며 오직 성경만이 가르쳐지고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는 곳으로 복음의 산실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세 가지에 반했습니다.

첫째는 너무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매료되었습니다.

아늑함이 밀려오더군요.

두 번째는 최상의 웰빙 음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먹는 것을 배제 할 수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더욱 놀라운 것은 최원장님의 강의 말씀이 너무나 살아 있어서 제가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그런데 교회를 다니기는 하였어도 흔히들 말하는 발바닥 신자에 불과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 들려오는 신선한 메시지를 듣고 있으면 한 시간이 어느새 흘러가 버렸습니다.

며칠만 쉬었다 가려고 왔으나 몇 주를 있게 되면서 내 마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그 마음을 시로 한 번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축복 받은 자만이 이곳에 올 수 있다

 

섬진강 굽이돌아

산기슭 돌아 서니

주님의 품으로 감싸 안은 듯

아늑함이 밀려오는 언덕 위 벧엘의 집

온갖 꽃향기 풀 향기가 고단했던 심신을 달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소리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주셨던 에덴의 동산이련가

아침을 열면 신선한 공기와 햇살물과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잎

들려오는 생명의 메시지 그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숨결이 살아 있다

삶과 죽음의 갈등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잃은 자가 얻은 자를 위해 기도하고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위해 축복하는 곳 벧엘의 동산

난 누구를 위해 아파했던 날들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매미가 긴 잠에서 허물을 벗고 탈바꿈 하듯

새벽이 캄캄한 밤의 어둠을 걷히듯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꽉 닫혔던 무거운 벽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허물어지고

아직 거듭난 삶이 아닐지라도

새로 피어난 꽃잎이 아닐지라도

나도 막차를 타고 온 손님이 되어

축복 받은 자만이 올 수 있는 이곳에

초대됨을 감사드린다.

 

 

재발성 구내염

 

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고 있으며 나이는 60세이고 지역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간증을 할 만한 대단한 병은 아닙니다그러나 이 병은 나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이기에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병원치료는 물론 한방기타 방법을 다 시도하였지만 낫지는 않고 마음과 육신은 시들어 갔습니다제가 앓고 있는 병명은 병원에서는 재발성 구내염’(자가 면역증)이라고 합니다이 병이 심하면 베쳇트라는 희귀병으로 바뀔 수 있으며 이 병은 정말 무서운 병으로써 각종 장기에 염증을 일으키는 무서운 질병입니다또 입안에 염증이 한곳에서 오래 생겨 있으면 암으로 변하는 고약한 병입니다.

이 병은 처음에 아주 작게 시작하여 그저 식사하기가 약간 불편한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커지고염증이 생기는 주기도 빨라져서 크기가 쌀 한 톨 크기에서 나중에 제가 이곳에 올 때는 1원짜리 동전 크기가 되어서 통증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염증의 발생주기도 처음에는 병원 약으로 2, 3일치의 약으로 치료가 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5일주일열흘보름이제는 한없이 항생제를 먹어도 낫지는 않고 입안에 돌아다니며위에 아래에 잇몸에 입천장에 어디든지 상처가 나고 염증이 생기고 또 염증이 생기면 동반되는 무기력증은 정말 나의 육신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통증은 어떻게 진통제의 도움으로 약간이라도 완화 시킬 수 있지만 무기력증은 어떻게 도리가 없었습니다몸의 무게가 천근은 되는 것 같고그러니 누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며칠이고 못 일어나고 염증이 나아지면 무기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다시 다가오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몸이 이러니 생활 여러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경제적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하고어떤 계획된 일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대인 관계에서 세우는 계획이 지켜지기 어려울 때가 많으니 삶에 짜증이 나고 신경질을 부리게 되고 부정적 생각에 노여움을 잘 타는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이러한 세월이 어느덧 20년이 흘러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정말 생각조차 하기도 싫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입안의 혀가 통증으로 심하게 아프면 차라리 그곳을 도려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최근에는 염증이 생겨서 낫지 않고 보름이 넘어가니까 이제는 조직검사를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조직검사를 하였습니다조직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조직을 떼어낸 그곳이 문제였습니다두 바늘 꿰맸는데(조직을 떼어낸 곳사흘 정도면 나을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그런데 낫기는커녕 심하게 덧나서 환부가 커지고 통증은 심해지고 병원 약은 이제 효과가 없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수준 높은 현대의학을 자랑하는 의술도 이 작은 염증하나 잡지 못하나 하는 답답한 생각이었습니다마음속에 절망과 좌절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고 동시에 심한 피로감이 엄습하였습니다정말 쉬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곳이 어디 있을까 막연하였습니다저는 사실 교인으로써 건강기별을 알만큼 알고 어떻게 하면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는지 방법은 알고 있었습니다이곳에서 하고 있는 음식물식사방법금식의 유익교육에 대하여 알고 있었지만 실천은 절충식으로 현미식은 하지만 백미도 가끔씩채식을 하지만 육식도 마다하지 않는 그러나 더 문제는 맛있는 음식은 많이 먹고 포만감에 빠져 버리는 과식을 하게 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반응하여 자신을 내려놓는 지혜가 없는 그저 무늬만 성도요 교인이었습니다운동부족편식과식은 나의 건강을 여기까지 오도록 만들었습니다그러나 질병의 원인이 이런 생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세상에 대고 불만을 터트리고 하늘에 불평을 하였습니다찾을만한 때에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지금 이런 부끄러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을 나와 함께한 고통저는 이제 막다른 곳에 와 있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막다른 곳에 서 있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이곳 벧엘수양원을 선택하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사실 이곳을 정하기 전에 집 가까운 어디에서 그냥 막연하게 쉬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 봅니다제 인생에 세 가지 잘 선택한 것이 있는데 하나는 제가 사랑하는 아내이고두 번째는 삶의 도중이라도 신앙을 받아들여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일이고세 번째는 막다른 나의 인생길에서 벧엘수양원을 선택한 것입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벧엘수양원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막상 이곳으로 결정하여 내려올 때 까지도 회복의 확신보다는 그냥 어떻게 해봐야지 하는 막연한 심정이었는데이 마음은 아직 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도 되는 것입니다내가 마음속에 살아 있으면 아무것도 되는게 없는데도 나를 버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수양원 앞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아주는 돌비가 있었는데 눈을 들어 바라보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이 말씀 한 구절에 나의 마음이 조금 풀어졌습니다포근함을 느꼈다고나 할까요그래도 등록을 마치고 원장님께서 장로님이세요?” 하고 물으시는데 장로는 무슨 장로요일도 못 하는데요라고 하고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마음이 아직 풀어지지 않았습니다방 배정을 받고 처음부터 과일 식사를 하고 물 많이 마시고 말씀 듣고 잠자고… 2, 3일을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렇게 했습니다어찌 그리 잠이 많이 오는지요.

삼일째 부터 움직여야 된다는 신호를 몸 안에서 받게 되어 움직이기 시작 하였고그때부터 입안에 통증이 조금씩 없어지고 염증도 작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사실 원장님의 아침,저녁 강의는 내가 어떻게 생활을 잘못하였는지알고도 실천을 하지 않았는지를 깨우치는 강의였기에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부끄러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좀 더 깊이 있게 깨닫게 되었고 나를 위하여 죄인을 위하여 죗값을 지불하시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와 사랑을 확실하게 붙잡게 되었습니다이제 나의 무거운 짐이 조금씩 가벼워집니다사물이 조금씩 다르게 보입니다마음이 가벼우니 산책길의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지나간 삶 속에서 내게 짐이 되었던 가족 간의 문제교회와 세상에서의 얽힌 실타래가 풀어졌고힘들었던 문제들이 주마등 같이 마음에 지나면서 서서히 해결되는 것입니다이렇게 쉽게 해결 된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습니다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무거운 모든 짐을 예수님 발아래 내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이제 정확하게 열흘이 되었는데 그 지긋지긋 하던 입안의 염증은 자취도 없이 사라고 흉한 흉터에 새살이 돋기 시작하고 있습니다나는 회복의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육신의 회복은 물론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영생의 소망까지도 확신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잠시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곧 예수님 다시 오심에 대한 재림의 소망을 가슴에 확실하게 안고 저 하늘 도성을 바라보게 됩니다병을 고쳐주심에 대한 감사보다 영생의 소망을 확신하게 하신 은혜에 더 감사 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예수님의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는 말씀의 의미는 치유와 회복의 말씀이었습니다.

끝으로 벧엘동산에서 환자들을 위하여 생명의 말씀으로 도우시는 원장님과 봉사하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구체신염

 

수양원을 떠나 온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고마우신 원장님과 수양원 가족 분들께도 모두 안부 전합니다.

사람이 한세상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을 따지고 보면 절반의 만남과 그 나머지 헤어짐이 아닐까요?

어떤 이유로 가게 되었든 수양원에 가게 된 것도많은 분들과의 만남도 다 하나님의 뜻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 하시는 자는 여호와이시니라는 잠언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 것 같습니다.

저는 50대 후반의 약도 먹을 수 없는 골치 아픈 병-신장이 고장 남으로 인해 잠도 거의 못자는 지경으로 벧엘수양원 프로그램에 참석했었습니다.

원장님이 지도하시는 대로 열심히 생활한 덕에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는 느꼈지만불면증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에 충분한 회복은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다만피는 깨끗해졌겠다 싶고신장은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집으로 돌아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기대도 않았던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잠혈수치도콜레스테롤도 모두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2011년은 제 생애에 있어 제일 중요한 해인 것 같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운입니까?

지금은 잠도 잘자고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과 깨끗한 환경주님을 알게 해 주신 원장님의 말씀...

이 모든 것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부산에서 권 OO 드림

 

 

나에게 와 주신 예수님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요전 이곳에 와서 엄청난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이 기적 같은 일을 저의 어설픈 글 솜씨로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지만 이 기적을 남들과 함께 느끼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주도에서 올라왔고 나이는 28살입니다.

이곳 벧엘수양원에 오기 전에 제 인생은 정말이지 엉망이었습니다항상 술에 찌들었고 방탕하게 살았으며 제 몸이 소중한줄 모르고 부모에 대한 공경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이었지요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끔찍한 삶 이었습니다이런 삶을 살았던 이유는 제겐 마음의 병이 있었습니다쭉 이런 생활이 이어져 왔고 어느새 저는 침대에 쓰러져서 꼼짝도 못하게 되는 신세가 되었고 거의1년 가까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폐쇄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그러다보니 제 체중은 130킬로가 되었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왔습니다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전 이미 살아야할 의욕을 잃었고 왜 사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죽지 못해서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처럼 우울증이 아주 심했고 마음에 상처도 매우 깊었습니다앞으로의 삶도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고 그냥 자고 먹는게 제 일이었습니다그런 제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저의 어머니가 성당에 다니시는데 그곳에 계시는 수녀님이 벧엘수양원이라는 곳을 소개해 주셨고전 너무나 집에서 나가고 싶은 나머지 어머니께는 살을 빼러 간다고 하고 도망치듯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벧엘수양원에 와서 혼자만 남게 되니 그 해방감이 너무나 좋았습니다전 다시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고이곳에서 살을 뺀 후 전 가족과 연락을 끊을 생각이었습니다그리고 혼자 살려고 했었습니다그러기 위해선 살을 빼야하는 게 급선무였습니다전 첫날부터 물금식을 하였고거기에 만족했습니다처음에는 살 빼는 것에만 목숨을 걸었습니다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교회에 다녀 본적이 없었고 예수님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척 어색하고 생소했습니다하지만 원장님 말씀은 너무나 듣기 좋았기에 거부감 없이 적응 할 수 있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저는 신약성경 마태복음마가복음을 보면서 예수님 말씀에 흠뻑 빠져서 원장님을 찾아가서 대뜸 교회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그동안 너무나 방탕하게 산 제 삶이 후회스러웠고 그저 앞으로 남은 인생은 좀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었습니다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그냥 그동안 엉망이었던 제 인생이 너무 힘들고 지쳤다고 할까요아무튼 무조건 그러고 싶었습니다하지만 이곳에 와서 가장 최우선 할 일은 살을 빼는 것이었기에 금식도 하고 운동을 해야 해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진 못했고 그 진도가 아주 느렸습니다그러나 성경의 말씀대로 살고 싶다는 저의 마음은 점점 더 강해 졌습니다.

 

2009년 10월 7일에 들어 와서 22일을 이와 같이 지내는 가운데 2009년 10월 29일 바로 제 인생이 180도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날 오후 전 평소처럼 산책을 하였고 기도를 드린 후 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그런데 그때 내 오른쪽 가슴으로 무언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그것은 사랑이었고그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컸습니다.그러한 사랑의 감정이 내 오른쪽 가슴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그것은 예수님의 임재였고 난 그분의 권능 앞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습니다그리곤 제 안의 모든 죄를 보여주시는데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였고 하늘을 덮을 듯이 보였습니다전 예수님께 울면서 빌었습니다.

죄송합니다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같은 죄인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고 전 그저 예수님께 저의 죄를 통회하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으며 저의 죄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 모든 일은 찰나에 일어났으며 그 동안 무수한 생각이 제 안에 나타났다 사라졌고전 울면서 그분께 충성을 다하리라 맹세 했습니다신기하게도 그분이 제게 오시고 나자 제 안의 악한 마음과 수많은 상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느꼈고 너무나 감사하고 도대체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하는지 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전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다음날 원장님을 찾아 갔습니다그리고 어제 있던 일을 빠짐없이 다 말하였습니다그리고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그 날부터 3일 동안은 예수님만 생각나면 하염없이 울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 가지 의문이 제 심중에 들었습니다어떻게 예수님께서 저 같이 교회도 안다녀보고그분의 율법대로 살기는커녕 거의 반대의 삶을 살았던 저에게겨우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한지 한 보름정도 지난 부족한 저에게 그런 이적을 일으켜 주셨을까원장님은 대답하시길 제가 예수님께 마음을 열어서 그렇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저는 그 뜻을 이해 못했고 예수님을 만난지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바로 성경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한 제 순수했던 마음이 제 자신을 버리는 행위였다는 것을 원장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전 그렇게 제 자신을 버렸고 제 마음을 주님께 드렸었던 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저의 그 마음을 봐주신 것 같았습니다저의 어떤 행위가 이러한 경험을 이끌어 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기 직전 저의 마음상태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저는 예수님 믿어야 영생 얻는다 라든지 회개의 경험이 중요하다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 전혀 몰랐고 생각조차도 못해봤습니다.

전 그 일로 예수님이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인자하신 분인지 알았고 그분이 우리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싶어 하신다는걸 마음으로 느꼈습니다그분은 우리의 친구 같은 분이십니다그리고 저의 기쁨이고 생명입니다무엇보다 제가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고 그 사랑 앞에서 술이나 우리가 사회에서 즐기는 그 어떠한 쾌락 따위는 하찮았습니다.

난 마치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즐거웠습니다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고 날 태어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고마웠습니다내가 이렇게 숨을 쉬고 자연을 보고 물을 마시고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내가 이곳에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그분 하나님 덕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사랑합니다나의 아버지시여!’ 라는 외침이 내 마음속에 메아리쳤습니다기도를 드릴때도 매순간 하나님예수님 너무나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이 이어졌습니다전 더 이상 그분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습니다왜나햐면 전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그분이 절 어마어마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이것만으로도 전 평생 그분을 위해 살아도 다 갚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전 기도 할 때 저 잘되게 해주세요행복을 주세요저 살 빼게 해주세요… 이런 거 기도 안합니다당신의 종이 되게 해주세요당신의 율법대로 살겠습니다그 안에서 살 때에만 전 기뻐하겠습니다라고 기도 드립니다그리고 너무나 사랑한다고그분을 만나고 제 안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엘렌 화잇 여사의 시대의 소망을 읽었습니다예수님께서 그 책을 읽고 있는 제 모습을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실까요전 마음속으로 늘 예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그렇다고 제가 숙소안에서 독서만 하지는 않았습니다오히려 전 사소한 일도 열심히 즐겁게 하였고 남들을 도와줄 때는 제 일 보다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게 전 너무나 기뻤습니다전에는 청소가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작은 일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하는걸 좋아하시고 남을 도우는 일을 좋아 하시기에 저 역시 그 일을 즐겼고 그분의 기쁨은 바로 저의 기쁨이 되어 제게 돌아왔습니다이미 제 안에는 살 빼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어머니가 너무 사랑스러웠고 우리 가족 모두가 진심으로 좋아졌습니다전 예수님을 만났던 밤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도 전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솔직히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조금 교만 했었습니다남들이 만나지 못했던 예수님을 전 만났고 일종의 엘리트 의식 비슷한 것에 빠져있었죠그런 제게 예수님께서 어떤 한분을 제게 룸메이트로 보내 주셨습니다그 분도 4년 전에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이었고 그 분을 만남으로서제가 막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저는 모든 죄를 용서받고 깨끗하여 졌지만 모든 유혹에서 승리한 의인은 아니었던 것입니다처음 제가 그런 감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창피하고 예수님께 면목이 없었습니다예수님을 비록 만났다고 하지만 제게 전지전능한 힘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 전과 똑같은 무력한 인간 이었던 것이었습니다전 제 자신을 반성하고 예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분이 절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이 일로 인해 저는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생긴 변화와 힘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그 힘의 원천은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우리가 성경을 보다 보면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이런 대목이 있지요이 말은 사람이 실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그분은 절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십니다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실천할 수 있습니다전 이미 벧엘수양원에 있는 모든 분을 사랑하고그 동안에 재산 싸움으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친척들도 다 사랑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이런 마음이 아직 완전하지 않고 미숙하기에 때때로 흔들리기도 합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분은 절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비례해서 커지게 됩니다물론 어디까지나 제 경험이 비추어 말하는 것일 뿐이지만 전 이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가끔 사람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사회는 악한 세상 마귀 투성이라고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많은 유혹과 쾌락에 타락하지 않도록 이론으로 완전 무장해야한다고 하더군요하지만 제 생각과 경험은 다른 것을 말합니다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무기는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사랑의 마음이야 말로 그 분의 율법을 지키게 만들고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물론 이론도 중요하고 나 역시 지금 이론을 공부하는 중에 있습니다하지만 이론만 있고 그곳에 마음이 없으면 무슨 힘이 있을까요설마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 말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제가 시대의 소망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그 많은 바리새인들이 이론을 몰라서 마귀에게 휘둘렸던게 아니다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마귀에게 당한 것이다.’였습니다.

그에 비해 아무런 이론이 없었어도 창녀나 세리 같은 자들은 얼마나 그 분을 사랑하고 따랐던가요사도 베드로나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많은 탄압 속에서도 그처럼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는 흔히 말을 할 때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합니다그것은 왜일까요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 원리라는 생각이듭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무기는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그 사랑이 있기에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고 어떤 고난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그분께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아직은 제 자신이 너무 미숙하고 그 분에 대한 사랑이 이것보다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하지만 두렵지는 않습니다전 예수님이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일만 허락하신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저는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당신의 사랑 앞에서는 제 생명조차도 바치겠습니다반드시 당신의 종이 되고 당신의 율법대로 살겠습니다제가 올바른 길로 갈수 있게 인도 하여 주십시오사랑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벧엘수양원에서 만난 예수 유방암

 

올해 45세 된 나는 중학교 2학년초등학교 6학년 형제를 두고 있고 나를 많이 좋아해 주는 남편과 함께 분당에 살고 있다.

98년 38세 봄에근종으로 자궁을 들어냈고겨울에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우측 유방을 들어냈다그리고 심장이 있는 가슴을 뚫고 굵은 동맥에 카테터를 박고 힘겨운 항암제 투여를 99년 여름까지 마치고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조금도 어김없이 성실하게 정해진 날짜에 검사하고약도 먹고치료에 응해 5년이 지났다현대의학에서는 5년이 지나면 완치로 본다고 했다완치라는 말을100% 신뢰하면서 지내던 중 6년째 되던 가을에 몸이 이상함을 느껴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병원 측의 대답이었다그래도 내 몸은 이상했다갑자기 춥기도 하고,몸살처럼 쑤셔오기도 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 다시 병원을 찾았고 촬영한 결과 척추로 전이가 된 것이 잡혔고 그것은 한 달이 지나면서 골반까지 까맣게 퍼져 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혈액종양 내과에서 다시 항암제 투여를 3주 간격으로 시작했고난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갔다또 다시 온 몸에 털이 다 빠지고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더니 진물까지 나오고 손톱발톱이 다 빠지며 6년 전 수술 후 항암제를 받을 때와는 다르게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다그런대로 넉달째까지는 견뎌낼 수 있었다.

5개월 째 접어들면서 난 걸을 수가 없었고 남편 앞에서 조차도 내 몸을 가려야 할 만큼 내 피부는 흉하게 변해갔다또 주위에 환우들이 항암치료로 고통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다항암제 투여 2-3시간 전에 피검사를 하고 정상수치에 못 미치면 항암제 투여를 미루었다가 몸의 면역력이나 백혈구 수치가 회복되면 다시 항암제를 투여하는 일이 계속 반복 되었다.

병원 영양사가 1일 권장량의 식단을 칼로리에 맞춰 짜주면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며 고기나 생선을 1끼에 적어도 한 토막 반 이상을 섭취하게 하는 단백질 우선의 식단과우유 및 유제품의 섭취를 강조 했다나는 성실하게 실천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갔다. 5월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항암제 투여를 했다그리고 6월 14일 화요일또 예약대로 항암제를 맞아야 하는 그때난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는 모두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내가 항암제 투여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서 생명이 설령 짧아진다고 해도 다시는 미련 갖지 말자.’

항암제는 기한이 없었다그리고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죽기 전에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미술 공부를 하던 20대에 숲 속에서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면 풀잎 하나도 내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그 무언가 오묘한 생명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성경을 접해 보았지만그때는 단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분께로 가서 그 생명의 손길에 나를 맡기고 싶었다.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이런 나의 상태로는 어느 것 하나라도 정상적인 관계가 불가능해 졌다친정 옆 10분 거리에 ○○○이라는 휴양처가 있었고 가족들은 그리로 가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오직 절대자의 존재를 깨닫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싶었고 그분을 만나면 내 병과 영혼까지도 맡기고 싶었다그래서 죽더라도 새털처럼 가볍게 미련 없이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었다솔직히 가족을 만나는 것조차도 힘들고 부담이 되어왔다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2005년 6월 24일 벧엘에 도착해서 원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 헐렁한 면 티의 편한 차림의 평범한 아낙의 모습.... 내 절망적인 병 때문이었을까눈물만 흘리는 나에게 눈물은 그분께 감사함으로 인한 것이어야지 병 때문에 서러워서 우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안 됩니다그분을 받아들이고 편히 쉬십시오.” 알듯 모를 듯한 그 말씀.... 차가운 듯한 인상.. 어떤 분일까 궁금하여 주신 책(성서의학맨 뒤에 필자가 만난 예수란 간증편을 보았고거기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전 인생을 주님께 바쳤다고 쓰여 있었다그때는 .. 그랬구나” 하고 한낱 글자로 내게 다가 왔을 뿐이었다.그 후로 그것은 진실임을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원장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시작했다매일 아침과 저녁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내 피부를 뚫고 뼈 속에 스며들어 영혼에 파고들어 왔다그리고 원장님만 보면 눈을 마주 할 수가 없었고 뒷모습만 훔쳐보다가 내 쪽으로 고개가 돌려지면 난 고개를 떨구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이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기를 일주일이 지날 무렵에 그 이유를 요한복음 3장에서 알게 되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세상 속에서 많은 것을 갖춘 니고데모는 학벌도 재산도 자랑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사렛 청년 예수 앞에 서면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그랬다그것이었다!성령이 사람 속에서 그분의 품성으로 빛을 발하시니 나의 죄성 때문에 눈이 부셔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니고데모가 예수 앞에서 느꼈던 그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던 나를 발견한 것이다원인을 알고 나니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해지기 시작했고 내가 몰랐던 내 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죄를 회개하라는 말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남을 해친 적도 없고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적도 없고 나름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한 대가로 의식주 해결하며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 죄였다.

하루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걷기 운동을 하던 도중에 그분의 사랑을 몰랐던 내 죄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손발이 떨려오고신경이 마비되어 오는 듯한 느낌에 뒷목에서 등으로 식은 땀이 뽀송뽀송 나면서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그분은 십자가에서 채찍 때문에박힌 대못 때문에 숨이 끊긴 것이 아니고 나의 죄 때문에 가슴이 아파 심장이 터져서 숨이 끊기신 것이다그것을 모르고 지금껏 내가 잘나서 세상에서 존재한 줄 알았던 나의 무지함...

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내 배 째란 식으로 강철판을 깔고 살아왔는지...내게로 향하신 그분의 사랑을 모르는 것이 죄였다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니 나의 존재가 너무나 귀하고 당신의 값진 피로 사신 내 존재가 의미 없이 한 줌 흙으로만 돌아가 가치 없이 끝나게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왔다그리고 수양원에 60, 70대의 늙고 힘없는 분들을 보면서 아직 힘이 있는 40대에 창조의 하나님내 몸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심에 감사했다나는 내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기억이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는 이 성경의 말씀을 믿었다영혼과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분이라면... 내가 그분 앞에서 그분의 뜻대로 관계를 회복할 길만 있다면 내가 병을 위해 울부짖지 않아도 될 것을 알았다오직 그분을 알고 싶었다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내 오관을 통해서 느껴보고 싶었다그것을 위해서 매일 기도했고성경을 읽을 때 그것은 꿀맛보다 더 했다.

수양원의 뒷밭에서 내 손으로 직접 뿌린 씨앗에서 열무며 상추의 파란 싹이 나는 것을 보면서의 신기함과내 온 몸이 점차 회복되고 피부가 말끔해져 가고 통증도 없어져 가는 날들 속에서절대자의 사랑을 오관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나뭇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속에서흐르는 햇빛 속에서향긋한 풀 냄새땅 냄새벌레 소리새 소리맑은 공기절대자의 따뜻한 사랑에 푹 젖어 호흡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전에는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위엄 있게 품위 있게 나를 내려다보는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 내가 숨쉬는 순간 순간이 하나님의 자비이고 사랑 속에 거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끊임없이 치료하시고 지금도 내 병 때문에 가장 근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다병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분을 이해하지 못한 나의 무지함 때문이었다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원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나 자신보다도 더 간절히 원하고 계시다는 것단지 그분의 자비와 은혜가 너무나 크고 끝이 없어서 거듭나지 아니한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생활을 리턴 해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셨던 목적에 맞게 믿음 가운데 순종하는 생활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전체이셨다현대의학은 그 전체 가운데 작은 부분집합이었다병원 의사도 최선을 다하지만인간의 노력과 과학은 하나님의 전체 집합 속에서 발견된 너무 작은 부분집합이었다나를 지으신 그분께로 가서 도움을 겸손히 요청했더니 너무 쉽게기쁘게통증 없이 회복시켜 주셨다지금은 몸도 마음도 날듯이 가볍고 기쁘다새까맣게 죽어가던 손톱발톱도 다 살아났고 피부에 진물이 다 없어지고 어린 아이 피부처럼 내 영혼과 함께 살아나고 있다나는 더 이상 내 혈관에 암으로 인해 주사바늘을 꽂지 않아도 될 확실한 이유를 발견했다.

내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갈 것인지그 어려운 해답을 얻었다죽음의 공포에서 진리의 자유 속으로 훌쩍 날아버린 내 영혼...여기까지 오게 한 암 병에 대해 감사했던 나날들...

하나님!

인간의 언어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이 안타까움을 아시지요?

 

 

하나님의 섭리 자궁 근종

 

언니여기는 천국이야언니도 와라여기 오면 언니 금방 나을 수 있어.”

6월 어느 날 이른 아침하동에 있는 어느 수양원으로 간다는 전화를 남긴 채 자신의 집을 떠난 현자가 며칠 후 전화를 하였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밝았고 들떠 있었으며 매우 행복했습니다이렇게 밝은 목소리를 들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지만 저는 픽 웃으며 난 매일 천국에 살아” 라고 대답했습니다. “언니잘난 척하지 말고 여기 와라정말 좋다니까.. 어떤 병도 나을 수 있어.” 저는 이렇게 벧엘수양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7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후 뼈로 전이되어 계속 항암치료를 받던 그녀의 몸은 당시 온몸에서 진물이 흘렀고 머리카락뿐 아니라 손톱 발톱이 다 빠져 매우 절망적이었습니다그러던 그녀가 다 나았다며그 후에도 몇 번이나 꼭 한 번 오라며 간곡하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마침 3박 4일의 윤독회도 끝났고 매주 한 번 지도 교수님과 하던 스터디도 한 주 간 방학을 하였기 때문에 학우들과 하던 스터디에 양해를 구하고 1주일만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1주일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 동안만이라도 서울의 더위와 오염된 공기를 떠나 있으면 마음이라도 휴식을 얻을 것 같았습니다그러한 마음으로 저는 벧엘수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8월 3일 오후 4시가 지나서야 하동에 도착하였습니다택시를 탔더니 기사분이 백미러로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건강해 보이는데 어디가 안 좋나요? ”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말씀드리기가 복잡하네요..” “그래요그래도 그곳에 가면 다 나을 수 있을 거예요내가 아는 택시기사 한 사람도 거기서 당뇨병을 고쳤거든요그 대신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믿어야 합니다그곳엔 별스런 병도 다 낫는다고 합디다.” 그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알지 못하는 사람 말 잘 안 믿어요어떻게 무턱대고 믿나요? ” 기사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벧엘수양원이라는 노란색 팻말이 눈에 들어오고 차는 곧 논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과연 어떤 곳이기에 현자도 기사분도 이렇게 확신에 차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지난 4월 중순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누구나 그러하듯 저도 생각지 못한 암 선고를 받고 잠깐이지만 눈앞이 아득하였습니다.

작년 11월 중순 빗길에서 미끄러져 다리골절을 수술한 지 5개월 만에 또 수술이라니... 머릿속이 복잡하였습니다당시는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였고 다리골절 때문에 3개월 반을 쉰 아르바이트(중생들 그룹지도)를 다시 시작한 지 한 달 반 밖에 되지 않았으며 제가 관여하고 있던 출판사에서 6월에 출간될 책의 원고를 정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그래서 의사선생님께 두 달 후에 수술하면 안 되냐고 여쭤보았습니다의사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암이 뭔 줄 알아요그렇게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니예요다행히 초기라 나흘만 입원하면 되니까 빨리 준비하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저는 나흘만 입원하면 된다는 말에 다음 날 입원을 하여 수술을 받았습니다그러나 수술 후 나흘은 열흘로 바뀌었습니다퇴원 후 잠시도 쉬지 않고 저는 예전과 똑같이 생활하였습니다그랬더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너무나 피곤하였습니다할 수 없이 반 달 만에 아르바이트를 접었습니다당장 생활비가 걱정이었지만 1년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겠는가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며 일을 정리하고나니 집에 일찍 올 수 있어 좋았습니다그러나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던 콜로키움스터디 등이 저를 유혹하였고 계속 제출해야 하는 페이퍼가 있었습니다여전히 힘들었고 여전히 피곤하였습니다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계속 미루어졌던 몸의 한 부분이 또 저를 괴롭혔습니다바로 자궁을 꽉 채우고 있는 근종들이었습니다.

저는 99년도에 자궁근종과 내막염 수술을 하였습니다그런데 그 근종이 또 자라서 자궁 속을 채웠습니다그래서 작년 여름 방학에 수술을 잡았으나 당시 서울대 병원이 장기간 파업을 하는 바람에 수술이 미루어졌습니다파업으로 제게 주어진 시간이 자꾸 줄어들자 저는 수술을 포기하고 한방치료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지도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그 한의사는 근종을 없앨 수는 없으나 크기를 줄일 수는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5개월 동안을 다니면서 여섯 재의 한약을 먹고 두 달 간은 매일 침을 맞았고 집에 와서는 뜸을 떴습니다. 1시간 10분이나 걸리는 그곳엘 다니면서 저는 매우 지쳤습니다혹이 처음에는 줄어드는 듯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혹이 크고 많아서 내 손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도 줄어들지 않는 혹을 만지며 겨울 방학에는 수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그런데 11월에 다리 골절 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것은 올 여름 방학으로 미루어졌고 4월에 유방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또 10월로 미루었습니다잠자리에 누워서 배를 만지면 전해지는 혹의 딱딱함.

오늘은 이 자리내일은 저 자리.. 여기 저기 자리를 옮기며 내 자궁 속에서 머무는 그 혹은 생리 때가 되면 더욱 커지고 무거워 배가 처지는 것 같았습니다계속 수술이 늦춰지면서 혹시 수술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수술 외에 이 혹이 해결 될 길은 없었습니다한약도 먹을 만큼 먹었고침도 맞을 만큼 맞았으며 뜸도 열심히 떴건만 혹은 여전하였고하나님께 기도도 드려봤지만 혹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다리에 박은 철심 빼는 수술도 해야 하는데 자궁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지 수술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하나님당신의 능력으로 저를 치유하여 주십시오당신은 치유의 하나님 아니십니까? ’

 

그때 들은 벧엘수양원 소식하지만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현대의학도 한의학도 속수무책인데 병원도 아닌 그곳에서 무슨 치료가 될거냐는 생각이었습니다잠시 환경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다 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는 생각벧엘 동산을 들어오는 길에서 한 저의 얄팍한 생각이었습니다벧엘이 위치한 곳은 참으로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한 자락널찍한 정원과 각종 나무마주 보이는 나지막하고 시원한 산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리는 각종 새소리벌레 소리...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확신이었습니다특히 제게 오라고 전화했던 현자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그녀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었습니다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던 그녀그녀가 결혼한 이후 이처럼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을 대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벧엘엔 암 환자들특히 전이된 분들이 많았는데그분들은 이곳에서 따뜻한 햇살맑은 공기깨끗한 물충분한 휴식적당한 운동절제된 생활자연식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 받게 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과연과연 그럴 수 있을까그래 한 번 믿어 보자 이들이 증거하지 않는가? ’ 저는 택시 기사분의 말대로 원장님이 강의마다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과일식에 들어갔습니다집에서 엉터리로 과일식을 하면서 체중만 줄었기 때문에 다시 과일식을 한다는 게 두려웠지만 과일식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몸속의 노폐물이 다 빠져 나가면서 혹의 경우 물렁물렁 해지다가 없어진다는 원장님 말씀을 따라 보기로 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보름 정도 과일식을 하라고 하셨지만 1주일만 계획하고 온 제게는 무리였습니다그러자 원장님께서는 맛만 보고 가겠네한 달은 있어야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사흘 정도 고민을 하였습니다당장 해야 할 일도 미루고 왔는데어쩌나그러나 다시 오기도 힘드니 보름만 있어 보자하며 당장 그 다음 주에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과일식을 시작하고 나흘 째원장님께서 어떤 변화가 없냐고 물어보셨습니다그때까지 별 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그런데 6일 째 되는날 어린 아이 머리통처럼 배 가운데에서 딱딱하게 느껴지던 혹의 양 옆이 물컹물컹한 것이었습니다저는 너무 놀라 배를 만지고 또 만져 보았습니다혹의 가운데 부분은 여전히 딱딱하였지만 양 옆은 분명히 물렁했습니다너무나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현자에게 말했습니다그녀 또한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언니에 대한 기도가 1순위였는데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네” 드디어 1주일간의 과일식이 끝나고 식사에 들어갔습니다.

혹은 갈수록 물컹물컹 해졌습니다바로 누우면 아랫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던 혹이 이제는 거의 만져지지 않았습니다아랫배를 꼭 누르면 겨우 만져질 정도로 작아졌습니다갑자기순식간에 없어지진 않았지만 서서히 지속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혹의 형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그동안 소원하였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한 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지만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난 지 17그동안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상처가 덧날까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그러다 올해 암 수술 후 묵상하듯 기도하며 지냈었는데 그러한 기도도 들어주신 하나님하나님께서는 믿음이 부족한 저를 벧엘로 인도하여 주셨고 원장님 말씀을 통하여성경을 통하여엘렌 지 화잇 여사의 글을 통해 당신을 보여주셨습니다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저를 벧엘수양원으로 인도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작년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궁근종 수술이 계속 미뤄졌던 것은 당신의 치유의 은사를 통해 저를 당신 앞으로 부르시는 오묘한 계획 이었습니다앞으로는 지금까지 살았던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즉 불치의 생활에서 벗어나 그분의 법칙 속에서 바르게 살아 다시는 병들지 않도록 절제하고그분의 뜻을 따르는 생활을 하기 위해 말씀을 상고하고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증거 하는데 게으르지 않는 생활을 하렵니다이것이 저를 벧엘까지 이끌어 주시고 치료하여 주셨으며 앞날까지 예비하여 주실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방암에서 폐와 임파선까지 전이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온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입니다저는 5년 전 왼쪽 유방암 수술을 받고 다시 4년 4개월 만에 폐와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상태에서 지난 8월까지 항암치료를 20회 받고 급기야 이곳 벧엘수양원에 내려왔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겐 정말 호랑이처럼아니 고양이 앞에 쥐인 듯 항상 두렵고 피할 수 없는 무서운 홀 시어머님이 계셨습니다어쩌면 아마추어 연예인처럼 활동하며 속세에 빠져 다니시는 어머님의 뒷바라지와 욕구를 채워드리기에 늘 지치고 힘이 겨웠습니다. 5남매 중 오로지 큰아들만이 자식이고 남편인양 믿고 사시는 어머니에겐 며느리가 아닌 사랑을 빼앗긴 질투의 대상인 저 여자인 제가 자리하고 있어 늘 피할 수 없는 애증의 가슴앓이를 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9남매의 둘째이신 어머님 형제분들의 모든 대소사는 항상 우리 네 식구에 한 달에 쌀 한 가마를 소비할 정도로 우리 집을 경유하며 이루어 졌고 늘 여왕처럼 군림하며 대접 받음을 즐겨 하셨으며 분별없는 낭비로 한 달 용돈 100만원도 부족하셨으니... 그야말로 나의 삶은 깊은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대며 한 발을 빼면 다시 한 발이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듯 힘들고 헤어나기 벅찬 삶의 연속이었습니다그렇다고 수만리 힘들게 비행하고 며칠 만에 돌아온 남편에게 번번이 하소연 할 수도 없어 제 가슴엔 늘 암울함만이 쌓여갔고 마치 늪 속을 방황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중, 5년 전(2000여름어머님은 아침에 수영을 다녀와서 나비처럼 예쁘게 모시한복을 차려 입고 은행에 돈 찾으러 외출하시다가 동네 어귀 길에서 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쓰러져78세 일기로 돌아가셨고 그날 가지고 계셨던 백 속엔 <은행에 돈 찾으러 가는 날 7월 18통장 비밀번호 ○○○○라고 적힌 메모쪽지와 함께 도장 그리고 1,600만원이 든 통장이 함께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한 달 후 저는 왼쪽 유방암 2기라는 충격적인 선고를 받고 절제수술을 받았으며 그 이후 지난 4년 4개월의 투병기간이어머님이 안 계셨기에 그래도 제겐 크게 숨쉴 수 있었고 마음 편하고 즐겁게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남편은 그동안 눈치 속에 못다 한 사랑과 성의를 다 베풀어 주었고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저의 달란트를 소신껏 펼칠 수 있는 정상 궤도에 이르렀으며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바쁘게 무주 구천동 33경전이란 제 2회 개인전도 성황리에 끝냈으며 문화센터에서 한국화 지도와 화실운영에 정말로 기쁘고 보람되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해(2004) 1224일 종합검진에서 폐에 5mm 그리고 가슴 임파선에 모래알을 뿌려 놓은 듯 암이 재발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또 다시 커다란 슬픔과 참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제가 25년 전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고 이른바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했지만 소위 발바닥신자라는 말처럼 주일에 미사 다녀오면 한 일주일을 그냥 나의 생활에만 여념 없이 바쁘게 주님을 잊고 살았으며성경말씀 한 번 읽지 않는 게으르고 부끄러운 삶의 연속이었으니이 슬픈 절망 앞에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리는 마음마저 염치없고 죄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병원에서 최선의 치료 항암제(탁솔)를 1주일에 한 번씩 맞고 UFT라는 신약을 병행하여 매일 먹는 치료가 진행되었습니다점차로 느껴지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독소가 얼굴에 여드름마냥 돋아나고 발바닥엔 감각이 마비되고 마치 모래 자갈이 잔뜩 붙어 있는 듯 이물감으로 걸음 걷기마저 불편하였으며머리카락과 하물며 속눈썹까지 모조리 빠졌으며 정말 암세포보다 정상세포가 더 죽어가는 상태에서 병원에 의사가 필히 하루에 소고기 600g씩 꼭 먹으라는 지시에 바보처럼 착실히 따르다 보니 몸무게가 8개월 동안 무려 10kg이나 늘어나 숨이 차고 정말 내가 봐도 보기 싫은 뚱뚱보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이 곳을 다녀간 교우 ○○○씨가 대동맥에 암이 전이되어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곳에서 23일간 수양을 하고 CT를 찍은 결과 암이 2/3가 줄었으며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동생 수녀님으로부터 전해 들으면서 저는 순간 그래 맞아완치가 보장되지 않는 이 힘든 항암치료를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지... 나도 그곳엘 내려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기면서이튿날 항암주사를 20번째 끝내고 퇴원하여 새벽 5시에 남편과 함께 내려왔습니다.

드디어 벧엘수양원에 도착하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커다란 돌에 새겨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이 눈물이 나도록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저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었습니다제 마음은 너무도 평안하고 마치 친정엄마 품에 돌아 온 느낌이었습니다그리고 그날부터 하루에 두 차례씩 전해주시는 최 원장님의 복음 말씀은 정말이지 구구절절이 고단백 영양제와 치료제가 되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좋은 물온갖 풀벌레 소리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울려 퍼지고푸르고 싱그러운 아름다운 자연의 동산에 마치 포근한 새의 둥지처럼 자리하고 있는 이곳 벧엘수양원에서 온갖 잡다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멀리하고 잊은 채 건강식과 오로지 하나님의 빛나는 보석 같은 귀한 복음 말씀만을 나의 가슴에 오롯이 한 아름 꽃으로 받아 안으며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거듭 새로 태어나기 위해 간구하며 애쓰고 있는 이 미흡한 저에게 주님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림은 하나님께서 저를 가엾이 굽어보심일까요저는 지금 마음과 몸이 최상의 컨디션 상태입니다불편했던 몸의 상태가 거의 호전되었으며 특히 한 달 동안 체중이 6kg이나 조절되었으니 지금은 날아갈 것 같이 몸이 가볍고더욱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너무도 행복합니다제 몸에 재발된 고약한 암은 지금 이미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이곳 벧엘수양원 최 원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여기 계신 여러분도 다 함께 주님 은총 안에서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5년 후에 온 편지)

 

뜨거운 태양과 7월의 푸르름이 어우러져 결실을 위해 성숙해 가는 하절기에 원장님 안녕하세요!

벧엘수양원 가족 함께 안녕하신지요?

돌아보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며 5년 전 꼭 이맘 때 수양원에서의 두 달의 생활은 저에게 새로운 생명의 삶에 끈을 잡고 다시 태어난 계기가 되었기에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말하지요아마 그때 제가 항암치료를 계속 하고 수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한 벧엘수양원은 제가 다시 태어난 제2의 고향이라고 늘 말하지요.

지금 수양원에 계시는 여러분탁월한 선택을 하셨어요힘내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고 그리고 수양원에서의 건강 채식 식단과 맑은 공기좋은 물운동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유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건강하세요감사합니다.

2009년 7월 이 ○○

 

 

깊어지는 육신의 병과 마음의 병 당뇨병

 

충남 예산 삽교읍은 바다처럼 넓은 평야 위에 떠 있는 작은 소읍입니다이곳에 삽교 고등학교가 궁전처럼 서 있습니다교직 20여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만인간성을 말살하는 듯한 혹독한 진학지도에 종사하느라고, 50년도 더 근무한 듯 아득합니다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은 밤까지 이어지는 과외지도 그룹지도 심야지도까지 이어집니다학교 지도가 끝나면 대개 새벽 1시가 되어갑니다나는 항상 진학반 담임이었고 3학년 주임이었고 연구 부장이었습니다나는 항상 이 진학지도의 큰 계획 속에 총 책임자가 되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잠을 안 재우고 학습시간을 창조해 주나 늘 고심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아끼는 자가 성공한다내일부터는 취침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 1일 학습 계획을 세워 아침 6시 50분까지 제출하라” 이런 진학 지도를 하려면 나 자신은 학생들보다 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학교 앞이 바로 내 집인데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었습니다진학 지도에 피로가 겹칠수록 담배와 커피만 더 찾게 되었습니다담배는 하루에 세 갑 이상을 피우게 되고커피는 하루에 10, 20잔 끝없이 마셔댔습니다이럴수록 식사량은 자꾸 줄어듭니다.

 

이러던 어느 날수업 도중 쓰러지게 되었습니다서울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어 급성 심근경색의 진단을 받고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그러나 몸이 너무 허약해진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회복하지 못하고 가사상태로 식물인간이 되어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20일 만에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되었습니다이때저의 몸에는 당뇨라는 병이 죄 값으로 천형처럼 몸 깊숙이 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퇴원할 때 체중은 35kg, 걸음도 못 걷는 나에게 의사는 당이 상당히 진행되었으니 식생활에 조심 하십시오” 라고 당부하면서 여러 가지 주의 사항들을 적어주었습니다그러나 나는 이때 살아난 것이 너무 좋아서 당 같은 것은 병이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그리고 몸을 보하기 위하여 한약도 달여먹고 개고기소고기를 끓여 먹으며 건강회복에 열심이었습니다병원에서 주는 당약을 계속 먹으면서 체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갈수록 당뇨병은 점점 더 악화되어 고갈증이 엄습했으며먹어도 먹어도 배부를 줄 모르는 고창증이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치아가 다 빠져 내려앉았습니다앉으나 서나 물만 마셔대니 물메기라는 별명과 눈만 뜨면 잠 잘 때까지 계속 무엇이든 먹어야 되므로 식충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나에게는 물메기든식충이든 이런 문제보다도 자꾸 줄어드는 체중 때문에 초췌할 대로 초췌해진 나의 모습이 문제였습니다.

남자 키 165cm 40kg도 안 되는 초췌한 모습에서 오는 자멸감이 마음을 괴롭혔습니다사람을 피하게 되고 숨고 싶은 마음의 괴로움을 세상에는 알아줄 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의 짊어진 운명은 아마도 그 영혼마저 가랑잎처럼 마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여이 메마른 생명을 버리지 마옵소서 이 죄인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동안 감리교회에 입교하여 있었던바 보잘 것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찾았습니다사람이 죽게 되면 최후에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이 나의 입장이 될 줄은 진정 몰랐습니다.

2004년 7월 1민 장로의 간절한 청을 물리칠 수 없어그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장로님과 함께 떠나 하동 벧엘수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민 장로님이 마음속에 큰 상처를 입고(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함괴로워하고 있으니 같이 동행하며 위로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산속으로산속으로..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묻고 물으며 찾아왔습니다.

벧엘수양원!

양지 바른 산록에 자리 잡은 이곳은 한마디로 말하여 신선이 사는 곳 같았습니다무엇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최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모든 미진한 마음이 다 풀리었습니다그분의 모습에서 와 닿는 중압감이 나를 천근처럼 짓눌렀습니다. “오늘부터 과일식을 하세요.” 원장님의 말씀은 절대자의 말처럼 나를 압도했습니다과일 몇 조각을 먹고 저녁 예배를 드렸습니다원장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허공을 채우며 내리는 진리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목사의 설교도 많이 듣고 부흥회의 설교도 들어보았지만 이런 말씀은 처음이었습니다천둥처럼 울리는듯 하다가 엄마의 정다운 목소리처럼 마음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원장님의 강의가 있으시기에 이곳 벧엘수양원이 성령이 충만한 치료의 동산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막혀있던 귀가 확 열리는 듯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습니다.

과일 몇 쪽 먹고 오늘 밤 그대로 잘 수 있을까?... 물병은 옆에 있지만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두려움이 앞섰지만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부르면서 잠이 들었습니다다음날 아침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정신이 유난히 맑아오면서 이렇게 먹고도 살 수 있다는 승리감이 가슴을 메워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식욕을 잠재워주시고 새 날을 맞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틀사흘나흘... 과일식은 4일로 끝내고 정상식을 하여도 여전히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매일 원장님의 강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아득히 멀기만 하였던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면서 평생 그렇게 진지한 기도를 드려 본적이 없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벧엘수양원에 들어온 지 12일 째치료의 광선을 받으며 감격합니다이제 불치병이라고 하던 나의 당뇨병은 사라졌습니다물메기처럼 마셔대던 갈증도 없어졌습니다식충이처럼 먹어대던 음식도 조절이 되었습니다체중도 3kg이나 올랐습니다날마다 새로운 힘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불치의 병은 없다다만 불치의 생활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며우리 인간과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영생하기를 원하십니다>라고 강의 하시던 원장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그러나 나의 병이 완치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사임을 잘 압니다때문에 앞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진다면 당뇨는 재발될 것입니다예수님을 영접하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겠습니다.

 

 

치료제가 된 하나님의 말씀 우울증

 

불교 신자인 가정에서 자라고교육 받고살림 배우다가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교회를 다니므로 해서 핍박이 심했고 그러한 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지요하루 세 번씩 기도를 하던 중 캐나다에서 온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1977년도에 캐나다로 건너갔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걸 그저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열성을 가지고맡겨진 일에만 열심히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이민 생활 15년 되면서 미국으로 건너와 직업까지 바꾸게 되었습니다치과기공을 하면서 열심히 살던 중 예전과 다르게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습니다피곤하고 지치고 짜증이 많이 나면서 교회 일은 점점 부담스럽고 짐 덩어리가 되는 게 모든 일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건강 진단을 받아보니 갑상선골다공증자궁근종헤모글로빈 저하증우울증고혈압치질백혈구 적혈구 수치가 낮아지는 증세까지 보였습니다약 처방을 받았지만 이 약을 다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42살이라는 나이에 이 약을 다 먹는다는 건 참으로 나에게는 슬픈 일이었습니다왜냐하면 이 약들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지요그리고 자궁근종으로 하혈이 심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두 번을 수술해서 애를 낳고 두 번 자궁 외 임신으로 수술한 상태 여서 정말 더 이상 살아갈 힘이 나에게는 없었습니다잠을 자려면 통증으로 2-3시간 애를 쓰다 잠이 들고잠이 안 오면 별 생각이 다 들고... 그리고 제 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요뒷골부터 두통이 오면서 그것이 이마 쪽으로 까지 퍼지는 게날이 밝아 눈을 떠도 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증세가 나타나 작업 할 이빨이 보이지가 않아서 일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바람 빠진 풍선이 주저앉듯이 에너지가 소르르 빠져 내려가 주저앉았지요그때 간 곳은 보험이 없었기에 한의원 이었지요진단 결과기가 다 빠져나갔으며우울증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한숨을 돌린 후 저는 깊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요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 어쩌면 빠르게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믿는 사람으로서 본향이라는 곳을 나는 갈 수 있을까구원을 얻기에 내가 합당한 사람일까… 이러한 생각들이 들면서 성경책을 펴놓고 나를 진단해보기 시작했지만확신이 없었습니다육체적 뿐만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바라 봐도 정말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극심한 실망과 좌절을 느꼈습니다교회 다니므로 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교회 다닌다고 남편에 대한 모든 것도 내가 참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지난 세월… 그냥 교회를 포기하고 내 마음대로 세상에 나가 살고 싶어 교회를 1년 동안 나가지 않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에 세상과 어울리지도 못했지요자녀를 생각해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고

앞으로 전진할 수도뒤로 물러 설 수도하늘로 솟을 수도땅으로 꺼질 수도 없는 정말 영적육체적정신적으로 병든 상태에서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 손으로 인생을 끝내리라는 계획까지 세우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에 교회에서 최차순 원장님 건강 세미나가 있다는 소식에 하루 시간을 내어 한 번 가보게 되었습니다마침 제가 간 시간에 그분의 간증담을 듣게 되었습니다어쩌면 나보다 먼저 걸어 나온 비슷한 환경과 인생의 선배이며 신앙의 선배라는 생각이 들어서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나의 가슴을 친 한 마디가 있었는데, “자매님은 예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라는 거였습니다그러고는 남편과 의논을 하고 열흘을 시간 내어 이 기회가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라 결심하고는 열흘 환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01년 6월 말이었어요하루 세 번 강의를 들으며 3일 째 지내면서 나는 너무나 꽉 막혀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이왕에 죽을 거 십자가에 가서 죽으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을 꼬박 새면서 야곱이 씨름한 씨름을 했습니다뒷날 아침강의에서 최원장님은 요한복음 1장을 펴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저는 그 말씀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손가락 끝발가락 끝까지 온 전신에 전류 같은 게 흐르는 걸 느꼈으며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그러면서 30년 동안 의문으로 풀리지 않았던 성경이 쫙 열리기 시작했습니다그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진통제신경 안정제호르몬제 역할을 하면서 나의 망가진 몸과 마음의 수술은 시작되었습니다도저히 회생 불가능했던 나의 인생이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으며재창조 해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은 나를 놀라게 했으며 그것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내 길에 빛이 되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시는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으며 경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은 알았지만 가슴으로 믿어지지가 않으니까 고통스러웠던 세월을 산 것이었습니다매일 매 순간을 하나님의 말씀인 영적 양식을 먹지 않으면 저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 말씀의 능력으로 부부회복자녀회복가족회복친구회복건강회복신앙회복 이 모든 것이 정말 우리 예수님 안에서 다 회복된 것입니다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무궁무진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감개무량 합니다.

 

시편 19장 7, 8절은 저의 삶에서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내 눈을 밝게 하도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나의 진통은 사라져 지난 3년 동안 전혀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자궁근종은 사라졌으며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에 도달할 때 호르몬 분비를 느꼈습니다건강 식생활을 하니 고혈압은 내려갔고 치질도 없어졌지요눈도 점점 정상으로 돌아왔고 심하게 앓던 우울증 또한 말씀을 보면서 기쁨 중에 살므로 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두통은 온데간데없이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내가 태어난 이유와 왜 살아야 하는지 목적을 찾았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여 나의 남은 인생 얼마간의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주님께 드리기를 지금도 갈망합니다.

 

 

간암 말기 환자입니다

 

저는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살고 있는 59세 남자입니다. 2004, 3월 초부터 저의 체중이 점점 줄면서 얼굴 피부가 검게 보였습니다그러나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일에만 열중하였습니다그러자 4월이 지나고 5월 중순께 갑자기 양다리가 붓고 소변을 보면 거품이 많이 생겨서 병원에 찾아가 당뇨 검진을 받았으나별다른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일이 지나 7월 초에 진주 경상대학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습니다검진 결과는 간신장폐에 물까지 찼다고 합니다저의 몸엔 합병증이 오고 말았습니다그러나 병원 측에선 본인인 나에게는 간이 좋지 못하다는 말만 하고보호자한테만 간암이고 종양이 7~8cm정도 되었다고어떻게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답니다.

검진 결과가 나온 7월 7가족들은 하루가 급하다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서울대학병원으로 가서 입원할 것인지그렇지 않으면 벧엘수양원으로 갈 것인지둘 중에 한 군데로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병원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이곳 벧엘수양원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사실 저는 수양원에 올적만 해도 중환자였습니다음식을 잘 먹지 못해 몸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얼굴에는 핏기가 없고황달 그리고 흑달이 와서 검었고 늑막에 물이 차서 심한 기침 때문에 말을 잘 못했습니다밤에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온 몸에 식은땀이 흘러서 옷을 다 적시게 되었고열이 나다가 춥다가 도저히 몸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3년 전부터 어깨에 사발덩어리 만한 혹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팔이 뒤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곳 벧엘수양원 최원장님과 상담을 나눌 때만 해도 1주일 정도 두고 봐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상담을 마치고 저는 이곳 요양원에서 지도해 주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처방을 따랐습니다.

저는 원래 철저한 불교신자였습니다그러나 제가 이곳에 오는 첫날부터 교회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찬미가를 부르며 원장님이 강의에서 일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저에게는 그 말씀들이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암은 죽는 병이 아닌데 간암은 참 잘 낫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장님의 강의 중 사람이 음식만 먹고 병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병이 잘 낫는다고 했습니다저는 저 자신도 모르게 그 말씀에 빠져들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요즘은 열심히 성경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느덧 몸에서 흐르던 식은땀이 멈추고 기침도 없어졌습니다소변도 말갛게 나오고신기하게도 어깨에 있던 사발덩어리만 하던 혹이 다 줄어들어 아주 작게 남아 있습니다사람들은 나의 얼굴을 보고 화색이 돌고 참 좋아졌다고 합니다저의 몸에는 날마다 힘이 솟고 있습니다.

어제도 밭에 가서 노작을 했습니다이제 살았구나 싶으니까이 좋으신 하나님의 처방을 나와 같은 환자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서 이 간증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이 이곳 수양원에 온 지가 26일째 되는 날입니다내가 살아서 여러분께 이런 간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저는 아직 회복 중에 있습니다.

다음에 또 좋은 결실을 얻어 여러분께 체험담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임파선암과 류마티스 관절염

 

어떤 말부터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신앙생활을 접어둔 지 9년이 흘렀다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그동안 앓아온 병들에 대한 반항심 때문인지 난 하나님과의 대화를 중단 했었다열병과 폐렴에서 시작된 나의 투병생활은 임파선 암과 류마티스 관절염을 비롯한 많은 합병증과의 싸움이었다.

계속해서 몸에 퍼지고 있는 암 덩어리들과 수많은 약들로 인한 후유증까지포기되고 버려진 삶을 살았다원망과 투정...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아마도 하나님께 대한 야속함이었을 거다.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들은 한결같이 다른 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써 주곤 했다겨울이면 더욱 악화되는 통증을 막기 위해 열대 지방인 필리핀으로 요양을 떠나 오고 가기를 5.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그곳에서의 병원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3개월 시한부선고를 받은 후매일같이 응급실에 실려가 마약과 수면제로 겨우 겨우 삶을 연장해왔다그런 상태에서 1년 6개월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나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는 듯했다내 몸은 낮과 밤을 구별하지 못하고먹는 것도 자는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며칠이고 뜬 눈으로 밤을 새곤 했다잠을 청하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신경과를 찾았다.

6개월 동안의 테스트 후 나에게 맞는 약과 분량을 찾을 수 있었다그러나 이것 또한 또 다른 합병증을 일으켰다대소변을 내 의지대로 할 수가 없었고시력이 극도로 떨어지며 글씨조차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환한 불빛은 눈에 통증을 유발시켰다아무튼 난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었다다시 점점 지쳐가고 포기를 생각했을 때신경과 원장님께서 여수요양병원을 추천해주셨다그곳에서의 생활이 한 달이 좀 넘어서야 안식일 교회라는 걸 알았다그만큼 둔한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수병원에서 만난 동생이 또 다른 요양원을 소개하며 날 설득했을 때 난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여수병원에서도 아무것도 느끼거나신앙을 얻지 못했는데 다른 곳이라고 얼마나 달라질까 싶기도 하고그만 포기하고 싶었다생각 끝에 가기로 결정하고 그 요양원에서 한 달이 좀 넘게 생활을 했지만 건강이 더 좋아지거나 호전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병의 차도가 없었기에 머무르는 것도 집에 돌아가는 것도 결정 못하고 힘겨워 할 때집사님 한 분이 이곳 벧엘수양원을 추천해 주셨다큰 기대 없이 그래이곳이 마지막이다이번에도 차도가 없으면 두 번 다시 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돈을 버리는 일도가족을 아프게 하는 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 속에서 이곳 벧엘수양원을 찾았다.

 

겉으로 봐서는 별반 다를 게 없었기에 첫날밤은 무거운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다음날 아침 첫 강의 시간에 교회의 문을 여는 순간 앞서 말한 9년의 공백기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나의 머리는 잡다한 모든 기억을 헤집고 있었다눈은 자연스레 바닥을 향했으며입술은 깨물어 침묵을 지켰다왠지 모를 낯선 감도 있었고찬미를 부르는 걸 보고 들으면서 그 어색함에 내 마음과 생각을 닫아버리고 맨 끝자리에 앉았다그러나 며칠이 지난 후 나도 모르게 찬미를 부르게 되었고최원장님의 말씀은 나의 귀를 열어주었다내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그렇게 12일이 지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책을 하고샤워를 하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늪에서 빠져 나온 것 같은 기분홀가분한 느낌이었다내 손은 떨리면서... 종양을 한 번 만져보았다쑥 눌러보기도 하고세게 둘러보기도 했다그 순간은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부족하고 모자란 나에게 이 큰 은혜를 주심에 감사하고또 감격하며 나는 하나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날은 마침 안식일이었다마음을 가다듬고 교회의 문을 열었는데 뭔지 모를 뜨거운 불덩이가 내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것 같았다조금은 당황하며 기도를 하는데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내 몸에 전율을 느끼며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을 누르고 눈을 감았다. 2명의 환자 간증이 끝날 때까지도 나는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옆에 계신 집사님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나보고 간증을 해 보라고 하셨다불과 2주도 채 안 된 암 환자가 그것도 3개의 종양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된 건지 나조차도 의심스러웠다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나이런 걸 교회말로 은혜 받았다고 표현하는 걸까나의 간증에 몇 사람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다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간절한 기도로 마무리 했다.

2주 만에 집에 돌아왔다도착하자마자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부터 받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3개의 종양이 다 사라져버렸고기타 다른 부분의 검사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시한부 선고를 받고 겨우겨우 생을 이어가던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속에서 새로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담당의사와 방사선과 과장님은 이 기적에 나보다도 더 기뻐하며 어떤 치료를 하고어떤 약을 썼는지 물으시며 받아 적으려고 하셨다나는 내가 치료 받은 내용을 다 설명할 수가 없어서마침 가방 속에 있던 최원장님의 강의 내용이 담긴 <성서의학과 영원한 복음>이라는 책을 드리면서이 책 속에 내가 치료 받은 치료법이 다 있으니 읽어보시라고 드리며 병원을 나왔다지금도 그때의 담당의사와 방사선과 과장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잊지 말라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걸! ’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그때가 바로 치료의 광선이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최차순 원장님께 감사드리며 혹 누구라도 이 글을 읽을 기회가 있다면나와 같은 은혜 받기를 기도드리며 인생이 힘들고 좌절될 때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권해본다.

 

 

알코올 중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저는 45이름은 김 ○○ 입니다알코올 중독 증세와 우울증 때문에 이곳 벧엘수양원에 왔습니다저의 지난 시절은 공명심권세욕자만심정욕복수심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명문대를 졸업하고 안기부, KOTRA(무역진흥공사), IBM등 한국에서 가장 좋은 기업에서 저를 부르고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몇 백대 일의 경쟁을 물리치고 중앙일간지한국일보서울경제신문에 들어가 정치부외신부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헛된 지식으로 충만해 있었고 지나친 자신감에서 오는 만용으로 혐오스런 인간이었습니다내 말이 모두 옳고 내가 가진 지식이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매일 먹고 마시고 쾌락에 젖은 도시에서 영혼의 빈털터리로괴로움에 지친 도시의 유목민으로 살아오면서 고독감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짧은 기간의 결혼이 이혼으로 이어졌고 아들 양육 때문에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이혼과그토록 원했던 기자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절망과그 고뇌 속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찾으면서 2년 동안에 부산에서 최고의 영어강사가 되었습니다인기가 하늘 찌르듯 했고 그 결과 큰 학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그 모든 것이 더욱더 저를 기고만장하게 만들었고 대단한 능력으로 여겼습니다.

거듭되는 아집과 자만심으로 저는 하나의 거대한 거짓과 모순 그 자체였습니다나의 말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고 내가 가진 지식은 한낱 돈 버는 도구였습니다내 행동은 언제나 과장되어 있었고비겁한 쥐처럼 겁이 많으면서도 항상 만용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잊혀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습니다남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실한 나 자신이 없었습니다욕망과 쾌락과 미혹에 빠진 더럽고 비참한 영혼의 알거지 였습니다그러나 비옥하지 못한 밭에서 자란 나무가 오래가겠습니까열매 없는 무성한 나무에 불과했습니다.

 

그토록 일취월장 하던 학원이 IMF 때 위기가 왔습니다학생이 계속 증가하니까 사태파악도 못하고 학원을 확장했고 늘어난 강사비와 한창 진행 중인 공사를 맡았던 회사가 부도나 그 공사비까지 떠맡다 보니까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기간에 학원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그 이후 몇 년간은 기억하기도 싫습니다술독에 빠져 살았고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자살까지도 생각했습니다.

나를 지탱해 주던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공허함은 술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얼굴을 가진 내 자신을 발견하고 죄의 노예술의 노예타락한 영혼의 노예가 되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마침내 항복의 흰 백기를 들고 제 발로 보호구역을 도망쳐 나온 인디언처럼 이곳 하나님의 집(벧엘수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곳이 하나님 집인 줄도 몰랐습니다하나님 집에는 정신적 물질적 양식이 많아 수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아도는 곳이었습니다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항복합니다.예수님 무조건 항복합니다이제서야 탕자인 제가 아버지 집에 돌아왔으니 저를 보호하시어 아버지 집에 계속 머물 수 있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이곳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은 번민과 한숨의 나날이었습니다.

1주일 과일금식이 끝나고 비로소 원장님의 말씀 속에서 세포까지 강하게 치고 지나가는 빛을 발견했습니다정말 이상한 기쁘고도 야릇한 경험이었습니다그때 이후내 마음속에서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내 몸 속에서는 주님을 닮으려는 모습과 아직도 남아 있는 자아가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이처럼 모순 덩어리인 제가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사랑의 주님을 어떻게 만나겠습니까?

계속되는 혼돈과 갈급함 속에서 10일 간의 물 금식에 들어갔습니다처음 며칠은 고통스러웠지만 마음이 그토록 가벼운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완전히 제 자신을 내려놓기 위해 눈물과 함께한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매일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정말로 외롭고 힘들었습니다너무나도 못났습니다주님을 알면서도 모르는체 한 죄를 용서해주십시오당신이야말로 저에게 생명의 힘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당신이 있으면 저는 절망에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당신이 있으면 불행을 딛고 일어 설 수 있습니다더 이상 비참하지 않습니다천지가 생겨나기 전부터 계셨던 주님!저는 주님을 믿습니다세상이 끝날 때까지 저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너무나 고마우시고 좋으신 주님감사합니다.’

이 순간 순간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제나 저제나 먼발치에서 보시면서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입니다주님은 계속 나타나 주지를 않았습니다그러나 저는 다만 아버지께 돌아온 행위 하나로도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라고 자위하면서 말씀을 파고들었더니그토록 보고 싶었던 예수님이 임재 하심을 느꼈습니다먼 곳에서가 아닌 바로 저 옆에 계셨습니다.

엘렌 지 화잇 선지자의 글 (시대의 소망생애의 빛건강생활의 지혜)성경과 이곳 원장님의 강의 속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장 63)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한 구절 한 구절 말씀을 읽고 씹어 먹었습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법열이 흘러넘치고 무명의 온갖 어둠이 사라져버렸습니다그 말씀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씨앗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홀연히 눈이 떠져서 어둠이 걷혔고 들을 귀가 열려서 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씨가 되어 싹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이토록 가까이 계셨군요감사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주님께서 저에게 달려와 껴안고 입 맞추고 빙긋이 웃음을 주시는군요왜 이토록 간절함과 새로움과 경외심을 고통 속에서 주십니까감사합니다.’ 터져 나오는 희열과 눈물의 북받침으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이렇게 좋으신 주님이 어제도오늘도내일도 저와 함께 계십니다그것도 바로 내 곁에서... 제가 마음을 돌려 예수님을 만난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정신병원까지 집어넣으려고 한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주님은 이제 내 안에서 나와 함께 늘 계십니다나처럼 미소 짓고눈물을 흘리며내가 잠들어 있을 때도 주님은 깨어 계십니다주님은 나의 생명입니다나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부도덕하고 무신론적인 방송출판영화가 범람하고 인간의 영혼이 타락한 이 시대에 내가 말하는 수업과 내가 쓰는 책과 내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 주님의 빛이 스며들어 어둠을 물리치는 도구가 되겠습니다베드로는 그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라는 굳은 신념과 주님을 향한 타오르는 불같은 정열과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흐느껴 울어 항상 손수건이 젖어있었답니다저도 예수님을 향한 불타는 정열과 뜨거운 사랑을 가진 베드로처럼 살겠습니다.

 

요즈음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열심히 탐구하고 있습니다그 속에서 성경은 지난 역사이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너무나 정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원인 모를 질병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해일테러 등은 예수님 재림의 임박함을 기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지금은 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의 전파로 본향 에덴으로 향한 준비 기간이며채식을 비롯한 건강 개혁의 시기라고 봅니다성소진리구속의 경륜 등이 너무나 절실하게 마음에 다가옵니다앞으로 하나님의 참 도구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어두운 세상의 명예와 재물에 몰두하고 있는 내 이웃과 가족들에게도 이 빛이 비추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혈액 동맥암

 

저는 전남 광양에서 살고 있고, 23년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화원을 경영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이렇게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그리고 병이 들고부터 그 돈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굉장히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위십이지장 뒤에 암 덩어리가 붙었고 심장에서 내려가는 대동맥에도 큰 암 덩어리가 있다고 했습니다그로 인해 고혈압에 당뇨에 그야말로 몸이 난리가 아니었습니다남편은 충격을 받았고 바로 서울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자고 하였습니다그리고 10시간의 긴 수술을 받았지요.

2년이 지난 후 다시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뼈로 전이가 다 되었다더군요골반뼈랑 갈비뼈 견갑골로 다 퍼져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 줄도 모르고 견갑골은침을 맞았더니 순간적으로 커져서 통증이 너무 심해 숨도 못 쉴 지경이 되더군요저는 또 다시 앰블런스 신세를 지고는 서울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담당의사의 말씀이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오른팔을 완전히 잃을 뻔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얼마나 놀랬던지...그러나 수술 끝에 결국은 견갑골을 잘라내고 오른팔 반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 뒤 동위원소 치료 3항암제 5방사선 치료 10번으로도 안 되어서 결국은 약이 없다며마약 진통제만 하루에 2알씩 3번을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정말 황당했습니다고혈압 약에 당뇨 약에 이제는 통증으로 죽을 때까지 지내야 하다니... 그동안 밖으로만 돌며 스트레스만 주던 남편이 어디서 들었는지 저기..하동에 벧엘수양원 이라는 곳이 있는데..거기 원장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소문났더라우리 거기 한번 가보자” 고 하더군요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마누라 생각하는 사람은 남편 뿐이구나 하는 마음에 남편을 따라 왔어요여기 요양원 동산에 막 들어서는 순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는 돌 판에 새겨진 글을 보고는 얼마나 내 가슴에 와 닿았는지...

!! 여기가 나를 기다리는 곳이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이틀째정말 이런 천국이 없구나 싶었어요결혼하고 25년 평생 이렇게 편하게 몸과 마음이 쉴 수 있었던 건 처음이었습니다내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려고 이곳으로 인도해 주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래서 나는 이제 마음의 짐어깨의 짐을 모두 남편에게또 무엇보다 예수님께 다 내려놓고 이제는 참다운 삶을 살아야지 다짐했어요이제 벧엘 동산에 온 지 한 달이 되었어요이제는 약을 쓰지 않아도 그 아픈 통증이 많이 없어지고 계단이랑오르막길도 겨우 다녔는데 이제는 산으로 들로 운동도 다니곤 한답니다잠도 너무 잘 자구요.

우리 사랑하는 예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유방암 환자입니다

 

저는 창원에서 온 32살의 주부입니다저는 현재 유방암 4기이며뼈와 난소로 전이 되어 수술을 못 받았습니다. 2002년 1월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2개월째부터 가슴에 몽우리가 잡혀왔습니다그때는 첫아이에게 모유를 수유했고 그냥 젖 몽우리가 선 줄만 알고 병원에 가서 물어봤더니 의사 선생님도 그렇다 하더라구요그런데 아이가 달수가 차는 것과 동시에 저의 가슴도 점점 커지고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병원에 갈 때마다 물어보아도 전혀 의심하지 말고 모유 수유를 하면 괜찮다 하여 그렇게 시간만 보냈습니다아이를 낳고 6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했는데도 그대로이고 어깨는 계속 아파와 또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유방 검사를 하게 되었고검사 결과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어리고 해야 할 일과 살아야 할 시간이 너무나 많은 저에게 이런 병을 주신 하나님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신앙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이 원망스럽더군요우리나라에서 유방암 수술로 유명하신 분이 계시다 하여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다녔습니다이미 많은 곳으로 전이가 되어 수술이 어렵고 항암 치료만 할 수 있다 하여 그렇게 따르기로 했습니다지금까지 30번이 넘는 항암제를 맞았으나 별 차도는 없고 통증이 너무 심하고 복수까지 차기 시작했습니다더 이상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지금까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토하거나 살이 빠지지도 않고 견디어 왔던 건 오직 의지력 하나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과 자식들 걱정 남편 걱정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 갔습니다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처음 결과 나왔을 때 조카가 이런 곳이 있다고 가보자고 했던 말이 기억나서 남편과 함께 벧엘수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나도 고향이 하동인데 같은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벧엘수양원에 내리자마자 엄마 품에 들어온 것 같은 포근함이 저를 감싸더군요젊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 요양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좋았습니다그날부터 나의 달라진 점은 아이들 걱정 남편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고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 돌보아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평화가 왔습니다.

원장님의 강의는 정말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들었으면 하는 간절함 까지 생겼습니다지금 현재 과일식을 하고 있는데 유방에 만져졌던 암 덩어리가 너무나 많이 줄고 복수도 다 빠졌습니다난소 쪽에 배를 만지면 덩어리가 잡혔던 것이 점점 풀어지면서 작아지더니 이제는 전혀 만져지지도 않습니다이대로 계속 유지된다면 조만간 더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고 나머지 일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라고 믿고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나는 하나님을 내가 아쉽고 간절할 때만 찾은 어리석은 사람이지만믿음이 약한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이곳으로 인도하고 싶어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제 몸에 있는 암은 잠시 왔다 갈 손님이라 생각합니다내 안에 굳건한 기둥이 되어주실 하나님이 나의 생각과 의지로 함께 있는 한 나는 절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서 이 모든 일과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주위엔 친구들이 많습니다그리고 나에겐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나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알아가길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아 들

 

저는 올해로 49살 되는한 소중한 아이의 엄마였답니다저는 유교 집안에 맏딸로 27년을 살다 2년 전까지 절에 다니며 불교신자로 47년을 살았습니다. 27살에 결혼을 하여 종갓집 맏며느리로,제사를 1년에 11번이나 지내는 종손 며느리로 살았습니다하지만 결혼한 지 3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었습니다병원에 가 보았지만 저희 부부는 아무런 결점이 없다는 거였습니다아이를 가지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결국에 우리 부부는 강남 어느 병원에서 인공수정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소중한 아들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은 너무 행복했습니다내 모든 인생은 아이 위주로 살았습니다그래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아이도 자라면서 부모가 기대한 만큼 착하고공부도 잘해 주었습니다더욱더 우리 아들이 나에게 전부였던 것은남편이 조금은 차고 냉정한 성격을 가진이해가 좀 부족한 사람입니다반면에 저는 그런 성격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아주 반대인 성격이었던 것입니다저는 그것을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때론 남편의 과격한 행동을 아이가 보면서 더욱 엄마인 나를 불쌍하게 여겼고 그럴수록 아이는 나의 보호자같이 믿음직스러웠습니다아들과 나는 서로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들을 생각만 해도 행복했습니다사실 저는 부처님을 믿는다 하면서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삼육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습니다그 학교가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어느 날 우리 아들의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습니다그날도 토요일 안식일에 교회를 간다고 아침에 저와 함께 아침을 먹고 집을 나가면서

엄마나 예배 드리면 전화 못 받아요” “그래알았어”...

그 말이 우리 사랑하는 아들과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교회로 나서던 우리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너무나 예쁜 너무나 사랑스런 우리 아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불과 한 두 시간 전에 교회 간다고 나갔는데....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현실이 아닌 것 같아 몸이 오그라지는 것 같습니다정말 뼈가 녹는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그날로부터 저는 우리 아이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먹지도 않았습니다.그리고 제가 할 일은 우리 아들 백일상만 치러주고 나도 아이 곁으로 갈거라고 생각하면서 책상 위에 사진을 놓고 때때마다 상을 차려 놓았습니다마지막으로 엄마인 내가 할 일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내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결혼한 동생이 한 달을 넘게 우리 집에 있으면서 저를 돌보아 주었습니다동생들이 불쌍했습니다내가 없으면 저것들이 누구를 의지하며 살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지현엄마내가 옆에 있는 거는 알겠어? ” 하고 묻는 소리에 그제서야 남편이 보였습니다나는 정말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열심히 성실하게 내 나름대로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면서이 다음 우리 아들에게 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한컴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0pt" lang="EN-US">. 그런데 남편은 교회 가면 항상 감사헌금을 내는 것이었습니다한번은 집에 와서 남편과 다투었습니다당신은 뭐가 감사해서 늘 감사헌금을 내느냐면서 화를 냈더니남편이 하는 말이 지현이 엄마가 이렇게 살아서 내 곁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감사해서 감사헌금을 낸다” 고 하더군요우리 남편이나 동생들이나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내가 죽을 거라고 불안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러던 중에 몸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온몸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어떤 약을 사용해도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남편이 약사인데 무엇을 안 해 보았겠습니까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더군요.

 

밤이면 잠을 잘 수가 없고 때로는 차가운 화장실 타일 바닥에 몸을 대고 누워있으면 좀 괜찮은것 같아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정말 몸도 마음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늘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같은 교회 다니시는 한 여 집사님이 하동 벧엘수양원에 좀 가보면 어떻겠냐고 여러 번을 권하는데도가봐야 죽은 아들이 살아 올 리도 없고 남편을 혼자 두고 떠나오기도 쉽지 않았습니다그러나 막상 이곳에 오고 보니 이곳으로 인도해 주신 예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아들에 대한 이 어미의 사랑 못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나와 내 아들을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저는 아들을 잃고는 다 잃었다고 생각했으나아들은 나에게 더 큰 것을 주고 갔습니다이제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 내 아들과 함께 만날 희망과 확신이 생기고 있습니다그날에 꼭 내 아들을 만나도록 살아갈 것입니다이제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예수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렵니다.

원장님감사합니다.

원장님께서는벧엘수양원을 떠나면 이곳도 최원장도 다 잊어버리고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라고 하셨지만 저는 벧엘수양원을 잊을 수가 없고 원장님이 강의하시는 생생하고 살아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원장님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최원장님 감사합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한 달 전 미국에서 이곳 벧엘수양원에 온 52세 된 아줌마다.

이곳을 찾기까지 나의 몸 상태에 대하여 우리 가족들 모두(친정과 시댁)가 아주 중병 환자처럼 취급했다. 8년 전 혈압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가 그 후 1년 후 장애자로 판명이 되어은퇴해서65세가 되면 나오는 은퇴연금을 나는 54살 때부터 받을 입장이 되었다겉으로 보기에는 비만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뚱뚱한 몸매에 보통 활동하는 데는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인다헌데 일만 하려고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르고 몸이 나른해져서 도저히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다의사의 진찰을 받아보니까 혈압도 문제지만 우울증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평생 우울증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젊었을 때 너무 건강하다는 자만감에 내 생활에 밸런스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한 탓에 생긴 여러 가지 증상이었다.

거의 15년 전부터 최차순 원장님의 테입을 통해서 또 미국에 오셔서 해 주시는 건강강의는 잘 알고 있었지만 내 자신이 건강으로 인해 이런 곳에 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2005년 6월 중순 이곳 벧엘수양원에 도착해 보니 꽤 많은 환자분들이 계셨는데 그야말로 나는 나이롱 환자(?)에 불과했다앞뒤를 둘러봐도 나처럼 정상인은 없어 보였다다음날부터 당장 평생 먹어야 한다던 약들을 모두 다 끊고 과일식을 시작하며 이곳 생활에 접하게 되었는데 한 일주일은 육체적으로 약간 피곤함이 오긴 했지만 약을 끊었다고 특별히 육체적으로 나빠진 것 보다는 오히려 더 정신적육체적으로 개운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 후 이곳에서의 생활은 정말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으로 가슴속부터 무언가 새롭게 느껴지는 생활이 되었다.

아침 7시면 최원장님의 주옥같은 말씀으로 시작해서 거의 유기농인 건강식과 지리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는 운동과 노작저녁에는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노라면 비누거품이 한없이 나오는 깨끗한 물정말 이런 곳이 어디 또 있을까 할 정도의 환경이다.

20명 정도의 환자들이 있었지만 나는 처음에 남자 분들은 이 집 식구들이나 일하러 오신 분들인 줄 착각했었다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건강하게 열심히 움직이고 일하시는 모습 속에 전혀 환자라는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 환자의 80~90% 는 암으로 거의 말기 상태인 분들이 많았는데 이런 분들이 하루 일과를 너무 열심히 서로 도우며 사시기 때문에 몸 상태가 보통 정상인들처럼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 할 정도로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자신이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분은 폐암 말기 환자로 폐에 물이 차서 병원 가서 물을 빼고 왔으나 숨이 차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던 분이었는데 이곳에 들어오실 때 산소기를 꽂고 거동이 불편해 옆에서 도와줘야 할 정도의 상태였는데 한 달 정도 계시다가 나가면서 병원에 가 다시 검사를 하셨다폐에 더 이상 물이 안 찰 뿐 아니라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또 한 분젊고 예쁘고 또 본인 말로는 교만함도 있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능력도 있는 분 같았다이곳 벧엘에 도착해 생전 처음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데 정말 능숙하게 나무도 잘 자르고 손수레도 잘 끌고 다니며 온 몸에 땀이 송송 나도록 일을 하고는 이 좋은 태양 아래서 이런 땀을 흘릴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말씀에진리에 눈물 흘리는 모습이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자신이 암이란 것이 감사하다는 이런 분들은 역시 일주일 정도 지나면 도저히 환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지는 모습이었다.

한 달 간이지만 나를 비롯해서 꽤 많은 분들의 놀라운 치유과정을 보고 하나님께서 주신 처방에 다시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이곳 생활에서 정말 큰 교훈을 받은 것이 있다면 물론 최원장님의 말씀과 봉사정신에 감탄을 했지만우리 원장님의 큰 따님 선아씨의 모습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부엌에 서시면 요리사고정원에 가면 일류 정원사며또 교회 강단에 서시면 확실한 복음을 전해 주시는 선지자시며방에서는 아내고두 아이의 엄마 자리를 지키는 정말 놀라운 젊은 부원장님을 보고는 이곳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감탄의 감탄사를 자아냈다언제나 제일 바쁜 모습으로 종종 뛰어다니지만 얼굴 한 번 붉히는 일 없고 또 어떠한 일이라도 꼭 원장님께 문의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되었다.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은 마음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운 사람은 전도를 하며

전도하는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있으며

구원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는 글이 새롭게 생각이 난다.

이번 기회에 정말 더 새롭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젖어 보며 죽음이 두렵지 않은소망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예수님을 더욱 더 새롭게 사랑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원 수 병

 

저는 중국 항주에서 이곳에 온 지 23일째입니다오기 전 3년 반 되는 시간을 고혈압협심증섬유 근육종으로 많은 병원을 찾아 다녔고 좋다는 약은 수없이 바꾸어 가면서 사용하였고특히 전신이 아프고 쑤시는 병은 확실한 병명도 없이 치료 방법도 없이 그저 진통제들을 먹으면서 약물의 내성으로 점점 많은 양점점 짧은 시간 간격으로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인생을 사는 것이 점점 지쳐갔습니다그러던 중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한국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한약도 먹어 보려고 왔습니다건국대 병원의 검사 결과는 섬유 근육종으로, 3년 동안 약을 먹어야 하고 치료율은 30%라는데혹 내가 그 30%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약을 먹으면 진통은 되는데 머리는 흐리멍텅해 지고졸리고식욕도 기운도 없이 살아야만 하는 진통약이었습니다절반의 희망도 없는 약에 매달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참 맥 빠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러던 중아들이 벧엘수양원을 알게 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아들은 저를 두고 떠나기 전 내 손을 잡고 어머니이곳에서는 가능하면 가지고 온 약을 드시지 말라고 할 건데 마음 편히 갖고 시키는 대로 해 보세요.”라며 자기가 보던 성경책을 손에 쥐어 주며 시간 있을 때 읽어보세요.” 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약을 안 먹고 어떻게 병을 치료한다는 건지 참 별난 요양원이구나생각하고 방에 들어와 먼저 온 환우들에게 진짜 약을 안 먹느냐고 물었습니다진짜 그렇다더군요.

저녁에 원장님의 첫 강의를 들었습니다말씀은 너무나 조용한데 그 품위나 말씀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고 믿음이 가는 분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약을 포기하고시키는 대로 과일식운동아침·저녁 강의... 모든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라 했습니다체중이 4-5kg 쫙 빠지면서 몸은 훨씬 가벼워지고밤이면 늘 자주 발작하는 협심증은 아무런 반응도 없고머리도 아주 맑으니 고혈압으로 근심할 필요도 없고온 몸이 쑤시고 아픈 증세도 점차 풀리면서 지금은 거의 증세가 없습니다그러다 보니 병에 대한 걱정은 점점 없어지고원장님의 강의가 머리에 들어오면서 예수님께 관심이 전부 쏠리는 것이었습니다진짜 헷갈릴 정도로 병 고치러 온 환자가 아니라 말씀 들으러 온 학생 같았습니다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되고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씩 느끼게 되면서 말씀이 더 듣고 싶고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강의와 함께 하시는 성경말씀을 반복해서 읽으며 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드디어 마음속에서는 아 이것이 절대적 진리구나다른 건 다 버려도 이것만은 꼭 잡아야 하는 것이고무엇을 다 못해도 내 생애에 이것만은 열심히 해야 되는 것이구나!’ 확신이 생겼습니다.

 

남편에게 버림 받고 억울하게만 살다가 그대로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인줄 알았는데 새로운 확실한 목표가 보이고 남은 생애 해야 할 일을 찾은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그래서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자꾸 나왔습니다산책을 해도누워서도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내가 무엇이 틀렸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열심히 양심껏 살았다고 당당하던 나는 내가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왜 회개를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점차 풀려지기 시작하며 드디어 내 병은 마음의 병미움으로 쌓인 병시기질투증오자아 등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생긴 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또 이 병은 오직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고 이 병을 고치려면 내 마음을 열고 하나님 의사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병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내 죄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 죄들이 무더기로 연달아 나오기 시작하였고 나는 머리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그 중에서도 제일 걸리는 건 아들이 신앙을 못하도록 하고억지로 유학을 보낸 그 죄가 하나님 앞에 제일 큰 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아들은 러시아 삼육대학에서 공부하고 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 일을 돌보고 있었는데저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해 갖은 방법으로 다른 공부를 더 하도록 유학을 억지로 보냈었습니다아들은 지금까지 그런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그 믿음을 간직하고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여 엄마가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나는 그 길로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고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아들아 미안하다이 엄마를 용서해라그리고 이곳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이제 병이 다 나았다.’ 하는 회개를 했습니다나는 처음으로 아들한테 잘못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한 내 병은 진정 그 원수병’ 때문에 얻은 것인데, 20년 전 나와 두 아이를 버리고 떠난 남편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였습니다용서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내가 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임이 분명해졌습니다증오와 복수는 원래 사단의 것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님도 분명한데 네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런데 하루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원장님의 그 진지한 말씀이 제 답답한 마음을 뚫었습니다그 사람을 용서하려고 마음을 돌리니 내 잘못이 더 크고지금 형편이 어렵게 된 그 사람이 불쌍해지며 내가 일찍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서로 원수가 되지 않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니 마음을 누르고 있던 큰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져 나가는 듯 시원해 졌습니다그리고 이제부터는 과거에 매달려 고통 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받은 감동은 정말 많습니다.

이곳에 와서 너무 감사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옆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고 계시고그분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 감사한 것은 내가 복도 많게 확실한 믿음을 가르치는 이 좋은 참된 진리를 만났다는 겁니다나도 이제 제일 바닥까지 자신을 낮추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주님을 따르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동참하여 이런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수고하시는 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께 너무 감사드리고중국에 가서도 널리 자랑하고 원장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따르는 여생을 살겠습니다.

2009년 8월 강 ○○

 

 

아 토 피

 

저는 벧엘수양원에 오기 전 아토피가 너무 심한 상태였습니다햇수로 3년 정도 절 괴롭혔던 아토피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유명하다는 피부과를 전전하고 나중엔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처방 해 준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 며칠 동안 증세가 호전 되는듯 하다가 속이 아프고 힘이 들어 약을 중단하면 다시 일어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심할 때는 얼굴과 귀머릿속몸 전체에 종기가 돋아나고 가려움을 참지 못해 긁기 시작하면 딱지가 떨어지면서 진물이 흐르고 귀는 진물에 붙어있다가 아침에 겨우 물로 떼어 내면 계속하여 피가 나고... 원래 피부과 약은 먹으면 졸리고 계속 잠을 재우는 약인데 밤이면 긁어대느라고 잠을 이룰 수가 없고이불과 패드베개엔 온통 핏자국 투성이고매일 매일 반복되는 이 진물과의 싸움은 정말 나를 지치게 했습니다병원을 열심히 다녀 증세가 호전되는 듯 해서 파마나 염색이라도 한 날이면 머릿속은 벌에 쏘인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눈이 튀어나오고 얼굴은 출산한 여자처럼 붓고가려워 보는 사람마다 놀라며 의사조차 놀라서 절대 파마나 염색을 못하게 했지만하지 않는다고 증세가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3년을 피부약을 먹은 결과몸은 항상 부어 있었고그 부기를 빼 보겠다고 또 다른 약을 복용하면서 나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고 우울증까지 오게 되고 매일 살기 싫다며 남편에게 짜증과 신경질의 쓰레기를 쏟아내며 살고 있을 때벧엘수양원에서 치료된 교회 형제님의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그 형제님은 전립선암 말기였는데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영육 간에 강건하여졌다는 이야기를 제 남동생이 전해 주며 누나도 가면 나을거라고 하도 강권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편에선 아토피는 세균성 질환인데 항생제를 먹어야지 식단이 바뀐다고 낫겠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이곳에 오면 세상과 단절 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 다니던 학교가 기독교 재단이라 예수님을 알게 됐지만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고사회 사람과 어울리고 그 세계에 빠져 살면서도 한편에선 항상 주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언젠가는 주님이 저를 온전히 받으실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있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달콤했고그것을 포기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아침·저녁 강의에 때로는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원장님의 인도에 따라 이곳에서 말씀을 참 많이 붙들었습니다요한복음 14장 13,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세속적인 것들을 끝내는 일나의 몸에 생긴 이 악성 아토피어떤 것은 안 되고 어떤 것은 되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이 말씀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회개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몸의 질병도 내가 잘못 살고 잘못 먹은 결과이며주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올 당시는 얼마나 부어있었는지 이틀사이에 몸무게가 3kg이나 늘고 부엉이처럼 퉁퉁 부어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도 안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온 지 20여일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아토피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깨끗하게 나았습니다체중도 정상으로 돌아왔구요.

항상 손이 머리 아니면 등다리팔에 가 긁어대고 있었는데 긁다긁다 어느 날엔 이 손가락만 아니면 상처도 덜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어느 순간에 보니 머릿속도 얼굴도 등도 몸 어디도 가렵지가 않았습니다원장님과 면담하고 하루 금식열흘 과일식그리고 보식을 일주일 했습니다원장님이 늘 말씀하시던 맑은 공기햇빛적당한 운동그 무엇보다 중요한 주님과의 만남이것은 복음이었습니다우리가 복음이라고 할 때 그 말은 복된 소식임을 압니다주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영적 복음과 육신의 질병에서 해방되는 육신의 복음이 이곳 수양원에 있음을 주께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아토피는 가벼운 질병이고 쉽게 고쳐지는 병이라고 할 때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고통은 본인 외엔 그 아픔을 모르듯 이 피부병을 3년이나 앓아 온 저로서는 그 반복되던 피딱지와 진물과 가려움의 고통을 다시는 앓고 싶지 않습니다정말 다시는...

 

또 한 가지 제가 깨달은 것은 병의 중함과 경함은 하나님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다만 우리가 주님께서 고쳐주실 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느냐 의지하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원장님의 말씀도 매번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하동 시내 한복집에 갔었는데 한복집 집사님이 원장님 말씀을 하시면서원장님은 옛날부터 성경책만 파더니 하늘에 속한 영역에서 그분의 사역으로 주님께 쓰임 받아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데자신은 땅에 것만 팠더니 지금도 땅에 속한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때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 동산에 주님이 머무시고많은 환우를 치료하시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늘 함께 하길 기도드리며깊은 애정과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시며 사람을 사랑하시는 원장님께 감사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2009년 8월 김 ○○

 

 

자궁 근종이 없어지다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동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풀벌레의 정겨운 합창을 들으며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다면 결코 올 수 없었을 하나님의 집 벧엘수양원!

 

나는 늦게 인연을 만나서 직장을 관두고 결혼 준비를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몸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아랫배가 불룩하고 딱딱한 혹 같은 게 만져지는게 아닌가...이게 뭐지언제 생긴 건지 제법 큰게 만저져 두려움이 밀려들었다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까 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어 결혼할 사람과 함께 병원에 가게 되었고근종이 10.5cm, 자잘한 것도 여러 개나 되고 난소에 낭종까지 정말 충격적인 결과였다.

앞이 캄캄해진 나는 병원 벤치에서 울고 또 울었다남들이 말하는 가정이라는 둥지에서 남편 그늘에서 편히 살게 되나 했더니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누구보다 선량하고 성실하게 바르게 살아 왔는데 신이 있다면 너무 가혹하다는 원망을 하였다.

도무지 길이 없는 것 같아 몇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하다가그런 몸으로 결혼을 해서 남의 집안의 대를 끊어 놓을 수도 없었고만혼에 행복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결혼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그 사람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지또 그 반대의 입장이라도 나 또한 변함없이 그와 결혼하리란 것을 알기에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되었다.

그 후에 여러 군데의 양·한방 병원을 찾았고 큰게 13.5cm로 보인다고 하며 임신은 고사하고하나 같이 수술이 시급하고 그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근종은 수술을 해도 다시 자라 재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고결국 자궁을 들어내는 걸 보며 수술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뭔가 내 의식과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메시지로 느껴지기 시작했고나를 바꾸고 인생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그러던 어느 날 전철을 타다가 우연히 내 눈에 뛴 채식과 생명이란 꾸깃하고 철 지난 책자그 속에 시조사 건강 상담 전화번호는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처럼 느껴졌고그렇게하여 나는 21일 간의 목마름 끝에 벧엘수양원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수술이 시급하다고 매일 설득하고 강권할 때 그런 종용과 불안함을 넘어서 단호하게 내 뜻대로 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만큼은 내가 선택하고후회 없이 결정하리라 결심했고언제나 나를 믿어 주고 내 결정을 존중해 준 남편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고마운지....

우리에게 벧엘수양원은 참 이상한 곳이었다.

비용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고 나중에 갈 때 성의껏 형편껏 하라니 의아했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바로 과일식을 시작했고매일 아침 원장님 강의를 들었다.

교회에 가본적도 없는데다 양가가 불교 집안에나도 불교 공부를 했던 터라 조금 생소하긴 했지만 삼일째, “나는 날마다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노라란 말씀이 내 가슴으로 울려 퍼졌다.

이곳은 말씀의 빛으로 밝은데다 과일식으로 몸을 정화시키고 정신을 명료하게 하여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자아의 실상을 잘 볼 수 있었다.

나는 날마다 용광로에 빠져 수없이 죽었고신기하게도 매일 매일의 회개로 일기장이 가득 찰 정도였다.

과일식 3일째빡빡하고 충혈 된 눈도가래나 재체기의 비염증상도 없어졌다.

예수님의 피와 살로 주어진 이 과일을 씨 하나껍질 하나도 남김없이 성심성의껏 먹었고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요 내 몸의 치료제가 될 만나를 너무도 감사하고 기쁘게 즐겼다.

과일식 14일째 신랑이 와서 내 배를 만져 보고 깜짝 놀라며 그 놈들이 다 어디 갔냐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나는 내 몸무게가 7.5kg 정도 빠지면서 근종도 거의 만져지지 않을 만큼 없어 졌다는 것을 알았다.

남들은 병의 증상호전반응들에 민감했는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원장님을 통해 접하며 내 안에서 깨어나는 그 말씀이 너무 좋았고성경을 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원장님 강의는 마치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신 듯 내게 필요한 말씀을 매일 아침 들려 주었고어느 날 새벽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란 구절이 뇌리를 스치며예수님께서 우리의 짐도 수고도 이미 다 가져 가셨다는 앎이 가슴으로 왔다내가 질 짐도 수고도 없는데 내 자아가 있어 그 고통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연달아 깨달아 지고예수님의 보혈로 이미 인생의 고통과 수고로부터 구원하셨다는 진리가 그 새벽 나로 하여금 자유의 참 맛을 알게 해 주었다행복했다아니 전 세포가 행복하고 충만한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자유함이었다춤이라도 추고 싶고 창밖으로 날아 갈 듯이 기뻤다.

그렇다면 왜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항상 기뻐하라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는 기도와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란 고백을 하나님께 처음으로 했다.

그 감사한 경험 후로 성경 말씀이 더 쉽게 와 닿았고입에 단침이 새벽마다 고이면서 입맛도 완전히 돌아오고통증도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불룩 나온 근종도 만져 지지 않는다.

늘 행복찬가를 부르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그런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신 원장님께도 깊은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2009년 8월 장 ○○

 

 

병원에서 벧엘에 오기까지 간암폐암

 

저는 대전에서 온 김 ○○ 입니다.

암 말기 환자로 현재 간에 5cm와 4cm 크기의 암 덩어리 2개와 폐에 1.5cm 내외의 암이 11개 있습니다.

2006년 8월 2일 동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간에 7~8cm의 암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처음 들었을 때는 설마 했는데 의사선생님께서 보여 주시는 영상을 보고서야 믿을 수밖에 없었으나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충남대학병원에서 CT검사를 받게 되었고 며칠 후 CT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선생님의 동정어린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간암입니다크기가 8cm정도 됩니다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다른 장기로 전이 될 수 있으니 수술을 서두르셔야 되겠습니다입원일자를 간호사와 상담 하십시오” 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휘청 거리는 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암에 대한 외과적인 수술은 일반화되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형종합병원과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친지 의사의 말을 듣고 충남대학병원에서 8월 28일에 간 절제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다음 날 집도하신 의사선생님께서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습니다잘 드시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 라는 당부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세상은 밝고 아름다웠으며 제 마음은 감사로 충만했습니다.

수술한지 15일 만에 퇴원을 하였고휴직했던 직장도 그해 12월에 복직하여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2달에 1번씩 정기검진을 받는 것을 제외하면 수술 전과 별반 달라진 것 없이 지냈습니다.

나름대로 식이요법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투병생활을 하였으나 AFP(암지표자수치가 점점 증가했고 이듬해 2007년 11월초 정기검진을 받아 본 결과 간에 1cm정도의 암 2개와 폐에 8개의 암이 새로 발견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이성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전이로 인한 충격은 컸습니다. AFP 수치가 점점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고나 조치도 없었던 주치의 선생님을 원망하며결국 삼성서울병원을 거쳐 다시 서울현대아산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서울현대아산병원에서 넥사바 처방을 받아 2008년 2월 12일부터 복용을 시작했습니다복용만 하면 치유될 것 같은 기분에 약을 처음 받아들고 구세주를 만난 듯이 기뻤습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환상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개월을 복용해도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암은 점점 커져가고 후유증만 심해져 갔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4월부터는 한방치료를 병행해 보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 5월말 진료결과 넥사바 복용이 효과 없다는 최종 결론이 나고또다시 절망의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의사선생님의 권유를 받아 임상실험 중에 있는 항암제 투여에 참여하여 치료를 받기로 하고 혈액검사, PET-CT, MRI를 찍고 입원일자를 예약한 후 집에 내려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험용 쥐가 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생각이 들고 병원 치료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면서서울에 있는 BRM 연구소전주 구이에 있는 한의원역학사무소 등을 전전하면서 대체의학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자연으로 돌아가 내 스스로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이겠다 생각이 되어 예약했던 병원치료를 취소하고숲속 치료를 위해 6월 25일 건강보조약품과 책 몇 권을 가지고 산골마을로 출발했습니다아름다운 경치와 신선한 공기는 기분을 상쾌하게 했고 무엇인가 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숲속 치료(풍욕삼림욕맨발걷기냉수욕..)와 건강보조제야채스프 복용 그리고 쑥뜸을 병행하면서 즐겁게 4개월을 생활하였으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9월 중순에 실시한 혈액검사 AFP 수치가 1200에서 3850으로 3배 이상 증가해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 본 것 같은데 이제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당황이 되었습니다.

그날 가족들에게 혈액검사 결과를 말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와야 되겠다고 하자 큰딸이 아빠인터넷에서 토모테라피 치료 효과가 무척 좋다는 글을 읽고 8월 달에 서울에 있는 몇 개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는데 강남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으니 아빠를 모셔 오래아빠토모테라피 치료 받자라고 딸들과 아내의 권유로 토모테라피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산골 마을에서 나와9월 27일부터 11월 11일까지 32회에 걸쳐 토모테라피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받은 3개월 후 혈액검사결과 3850이였던 AFP가 250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축하인사를 해주셨고 나는 하늘을 나는 행복감에 잠시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이제 됐구나이제는 살았구나’ 그러나 즐거움도 행복도 잠시 다음에 실시한 혈액검사 결과는 AFP가 1600으로 올라 있었고폐에서 암 3개가 또 발견이 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다시 한 번 토모테라피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금년 428일부터 5월 11일까지 10회에 걸쳐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를 받은 후 관리를 잘 못해서 재발이 되었다는 생각에 경기도 광주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요양생활을 3개월 동안 했습니다.

8월 12일 2차 PET-CT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AFP는 2800으로 올라 있었으며 간에 있는 암은 각각 5cm, 4cm로 커져있고 폐에 암 1개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았다는 주치의 선생님 말에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교수님이대로라면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지만 6개월 정도 입니다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둘 테니 곧바로 입원 수속하세요” 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 대답하고 그대로 병원을 나서 요양병원 차에 올랐습니다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리는 멍하고 두 눈은 넋 나간 사람처럼 차창 밖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치료하면서 1억원에 가까운 돈이 지출되었건만 결과는 절망뿐이었습니다.

요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병이 상당히 깊어 회복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는 벧엘수양원으로 떠나야 되겠다고 말하자 집안은 금방 울음바다로 변했고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아빠는 수양원으로 가는거다라는 말에 가족들은 울음으로 동의해 주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만났던 분들의 소개로 2009년 8월 25일에 벧엘수양원에 왔습니다도착할 당시 3년간의 투병생활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여서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고재미있는 얘기를 들어도 웃지도 않고슬픈 일을 당해도 덤덤한 감정이 메말라 있는 상태였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로 몸이 회복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습니다그 뿐만 아니라 내가 왜 살아야만 되는지 하는 삶에 대한 의욕도 상실한 우울증 초기의 상태였습니다.

원장님과 간단한 상담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방 배정을 받은 후 곧장 잠에 빠져 들었고 얼마를 자고 일어나 보니 해는 서산에 저물고 하늘에는 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으나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외길새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해보자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천연계와 매일 아침에 들려주시는 원장님의 말씀은 주님에 대한 믿음의 소중한 세계를 열어 주었고지금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그리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즐겁고 감사로 충만해져 갔습니다반신반의하던 병의 치료에 대해서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불안했던 마음은 안정이 되고 회색빛 세상이 밝은 광명의 세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새 사람으로 태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저에겐 과거와 현재만 있었고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미래를 생각할 때면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만이 눈에 아른거릴 뿐이었고그저 주어진 순간순간 열심히 사는 것만이 제 삶의 최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 하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아버지를 모시며 이웃과 나누는 소박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하루 일과를 기도로 시작하며 기도로 마무리 짓고진리를 깨닫기 위해 성경을 매일 매일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졌던 내용들이 주옥같은 말씀이 되어 저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아침예배 시간에 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이기심에 대한 회개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뒷산에 올라가 무릎 꿇고 저의 죄를 통곡과 눈물로 자복하고 나서야 저의 죄가 정말로 많고 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악화만 되어가던 제 병세에 조그마한 호전의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눈언저리의 어두웠던 피부색이 정상으로 돌아오고현기증으로 고생했었는데 차츰 차츰 그 증세도 없어졌습니다그리고 팔과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세포가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임이 틀림없습니다.

암 치료를 위해 병원한의원숲 치료요양병원뜸 치료각종 민간요법을 찾아 전국을 전전했던 기나긴 방황은 이제 끝났습니다암을 치료해 주실 유일한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암으로 고통당하는 환우 여러분저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세요.

희망의 아름다운 동산 벧엘수양원으로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죽으러 왔다가 살려고 왔습니다 공황 장애

 

2008년 9월 29일 새벽충남 연기에 사는 절친했던 친구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온 몸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날 아침조문을 가기 위해 차를 타려는데 도무지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열차를 이용하려고 의정부역에서 표를 예매하여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출발 시간이 채 5분도 남지 않았다급히 뛰어 기차에 앉았는데 기차를 잘못 탄 것이다다시 계단을 급히 뛰어 오르고 내려 출발 열차 좌석에 앉았는데갑자기 눈앞이 흰 스크린으로 가려진 것처럼 하얗게 되더니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이 아닌가순간 이게 죽는건가하나님살려 주세요’ 기도하다가 잠깐 졸도를 한 것 같다.

그렇게 조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머리가 멍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는 듯 했다그러나 그때 후로 힘든 작업 시에는 어김없이 가슴이 뛰며 어지럽고 불안한 증세가 자꾸 찾아 왔다.

어느날 교회에 출석하였는데 그날은 교회에서도 불안증과 가슴이 뛰며머리가 멍해지는 증세가 일어났는데 마침 교우 중에 의사가 있어 증세를 말했더니 심근경색 일 수도 있겠다고 빨리 병원으로 가 보라는데순간 불안이 파도처럼 덮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그날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은 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는 마음이 안정 되어졌다.

그런데 그날 저녁집에서 다시 심장 발작이 일어나며 곧 죽을것 같은 불안함이 겉잡을 수 없이 찾아 드는데 다시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서 재검사를 했고여전히 심장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신기한 것은 응급실로 들어오면 마음이 진정 되는 것이었다.

그 후로 3차례나 응급실 신세를 더 지고 나서주위의 권유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했더니 공황 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때부터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아무런 효과도 없이 1개월, 2개월, 3개월 약의 단위만 높아지고약 때문에 위장을 다 버리고식도목구멍편도선까지 염증으로... 육체도 점점 죽어가고 있었을 뿐 아니라심한 불안으로 공공장소에 나가거나 대인 관계를 전혀 할 수 없어 그간 함께 해 오던 가까운 이웃형제가족들까지도 아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접근 금지령을 내렸다.

겨우 죽을 마시다시피 먹고 연명해 가며나의 불안 증세는 날이 갈수록 더해 가는데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의 불안이 온종일 지속 되니 이제는 사는 것이 지옥 같았고죽음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 장로님의 권유로 벧엘수양원으로 오게 되었다.

첫날 원장님과 상담을 하는데 나는 죽으러 왔습니다하고 솔직히 고백했다사실 이곳에서도 내 병이 낫지 않으면 이 숲 속 어딘가에서 죽을 결심을 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원장님은 죽을 각오로 왔으면 빨리 낫겠네요” 하시며먹던 약을 다 끊고 과일식을 하라는 것이었다순간 당황 했지만, ‘죽으러 온 사람이 뭔들 못 하겠는가’ 하고 순종하기로 했다.

하룻밤을 지내는데 약을 끊었더니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아침이 되었는데신기하게도 불안한 마음이 싹 가셔졌다.

한 3일간은 그간 먹었던 약 때문에 위장식도목구멍이 몹시 괴롭고물을 많이 마셔도 소변이 노랗게 나왔다.

집에서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도 못했는데이곳에 와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아침·저녁 집회에 참석했는데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말씀이 한마디씩 한마디씩 나의 심중에 박혀 들어 왔다.

당시 솔직한 심정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통분함으로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항의하는 태도로 기도했다.

하나님왜 접니까왜요? ... 하필이면 왜?’

이곳 벧엘수양원에서의 처음 일주일은 정말 어렵고 힘든 한 주였다.

6일째 되는 날 나의 몸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으로 몸부림 치고 있었다.

온 뼈마디·살갗이 다 아프고식은땀오한이 나는데 아무리 이불을 덮고뒤집어 싸도 소용이 없었다.

7일째부터 잠시 잠시 눈을 붙이기 시작하니 살 것 같았다.

10일째 되는 날산책길을 걷다가 하늘을 향해 푸념 섞인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통곡으로 변하며 얼마나 울고 고함쳐 기도를 했는지..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는데그때 후로부터 나의 병세가 확연히 가벼워짐을 느꼈다.

하나님은 나같이 불경스런 사람의 기도도 들어 주시는군요!

하나님죄송합니다송구스럽습니다.

참으로 무식한 기도도 들으시는 나의 엄마 같으신 하나님감사합니다.’

좀 더 있으라는 원장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20일 만에 집으로 돌아갔는데첫날은 괜찮더니둘째 날 다시 공황장애 증세의 불안함이 덮치는 것이 아닌가!

삼일 째 되는 날 이곳 벧엘수양원으로 다시 돌아 왔다.

이곳에서 며칠 만에 병세는 진정되었다.

원장님의 배려로 이곳 벧엘에 정착하게 되고우리 가족 모두 이사를 와서 미약하지만 봉사자로 있게 된 것은 크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임을 고백한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안주해 살고 있는 나를 기이한 방법으로 꼭 붙들어 이곳으로 옮겨다 놓으셨다.

세상에서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일들이 이곳 벧엘수양원에서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세상에서의 기적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에는 상식적인 일임을 이곳에서 보고느낀다.

오늘도 전국 곳곳의 병실 침상에서 현대 의술에 의존하며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 하면서 그 지옥 같았던 공황 장애를 치료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죽으러 왔다가 이곳에 살러 온 나와 우리 가족!

이제 진정으로 남을 위한 봉사의 생애를 살아야지.

더욱 하나님과 가까이 생애 해야지.

2009년 8월 박 장 우

 

 

내가 곧 앉은뱅이였습니다

 

안녕하세요저는 중국 북경에서 왔습니다저는 1944년 생입니다중국 공산당 당원, 5호 당원건축 재료 연구원으로 건축 재료를 실험· 생산하는 회사에서 기술생산질량 세 가지 책임을 진 부사장 이였습니다.

임파선암과 편도선암으로 이곳 수양원에 요양을 하러 왔습니다.

사도행전 3장 2-8절에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성전문 밖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 할 때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 손으로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벧엘 수양원에 오기 전 저는 눈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못하는 소경이었고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였고입이 있어도 하나님을 찬미할 줄 모르는 벙어리였습니다하나님이 계신 것과 천국이 있는 것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매 토요일 마다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갔다 와서는 성경책을 책장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 주에 다시 가지고 교회를 가는 교인이었습니다.

어느 날다리가 있어도 걸을 줄 모르는 한 앉은뱅이가 벧엘수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첫 강의에서 이 곳에서는 두 가지 음식을 드리는데하나는 육신의 음식이요 하나는 영적 음식입니다하며 요한복음 6장 63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 이니라” 는 말씀으로우리 환자들에게 우리의 육체적 병과 영적의 병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잘못 먹고 잘못 산 결과임을 가르쳐 주시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치료실에서 하나님의 처방으로 올바르게 먹고 올바르게 살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참으로 마음에 드는 강의였습니다.

날마다 원장님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또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는 사이에 마치 땅에 스며드는 보슬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굳어진 나의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시간 듣는 강의와 날마다 읽는 성경 말씀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와 딸과의 갈등으로 생긴 병에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나의 죄가 줄줄이 흘러나오면서 하나님께 무수한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더욱이 하나님을 그렇게 불신하고 소신한 것을 너무나 회개하였습니다몇 번이나 눈물과 콧물에 흐느끼며 애통하며 회개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것과 우리와의 약속을 깊이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사야 49장 15절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 많은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의 말씀에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탕자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에서 나타났습니다그 깨끗한 사랑이 나의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이 바뀌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 좁쌀만 한 노란 꽃을 보며 너희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단 말이지?”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너희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단 말이지?”

주님의 창조하신 세계는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풍선을 분 것처럼 커진 암 덩어리를 만지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 이니라 내가 너희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희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 말씀에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그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시고 굳세게 하시고 도와 주셨습니다.

그의 전능한 치유의 손길이 뻗쳐왔습니다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크던 암 덩어리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한 달여 지난 지금은 새알만큼 작게 되고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 왼쪽 팔에 20년이 넘는 동안 여러 개의 이어진 혹이 있었는데어느 아침 일어나보니 웅덩이가 생겼습니다두 혹이 각기 양쪽으로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너무나 기뻤습니다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영적의 병이 치유되기 시작하니 육체의 병이 스스로 치유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었고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 드렸지만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예수님을 만나서 영생의 길로 가기 위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환우 여러분오늘 내가 곧 앉은뱅이입니다그 탕자입니다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하던 이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목청껏 찬송합니다.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동시에 이 좋은 예수 남편을 소개해 준 훌륭한 중매꾼 최차순 원장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나의 예수님사랑합니다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나의 예수님!”

그것 뿐 이예요참으로 이것 뿐 입니다.

예레미야 3장 22절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여러분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2012년 4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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